“늦게나마 민의 화답” “급한 불 끄기 속 보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3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27번째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정부가 3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으나 촛불집회 주도 단체는 집회와 거리시위를 이어 갔다. 정부가 협상을 전면 무효화하고 미국과의 재협상을 시작할 때까지 집회와 거리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시위에 참여하는 1700여 정당·사회단체 연합체인 국민대책회의는 3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 1만여 명(경찰 추산)의 시민이 세종로 등에서 거리 행진을 벌였고 미근동 경찰청사 앞에서 30분간 “경찰청장 퇴진” 등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6·10 때 100만 촛불행진 계획=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브리핑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발표는 한·미 쇠고기 협상을 통해 완벽하게 상실한 검역 주권과 파괴된 국민건강권을 회복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한시적인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중단은 폭발하는 국민 저항을 일시 모면하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하고, 30개월 미만 쇠고기에 붙어 들어오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도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협상 결과를 전면 무효 선언하고 즉각 재협상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회의는 5일 오후부터 7일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72시간 릴레이 집회를 열 계획이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6~8일이 연휴 기간이라 지방에서 상경하는 참가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들을 위한 상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7년 6월 항쟁 기념일인 10일엔 전국에서 100만 촛불대행진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미국산 쇠고기가 보관돼 있는 14개 냉동창고를 봉쇄할 방침이었지만 고시 유보로 저지 투쟁을 연기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국민의 요구는 ‘재협상’인데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수출 중단 요청에 그친 것은 정부가 여전히 미국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함을 드러낸 셈”이라며 “미국 측이 수용해 고시가 발효된다면 다시 실력 저지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미흡” vs “다행”=정부 발표에 대해 시민들은 “미흡하다”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늦게나마 정부가 민의에 화답했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회사원 최기월(29·여)씨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뿐 아니라 SRM과 내장도 문제”라며 “여기에 대한 재협상 논의가 없다면 국민들은 계속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자영업자 김상진(41)씨는 “이제라도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여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여론의 진원지였던 인터넷 공간에서도 찬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미디어다음 ‘아고라’에서 아이디 ‘usabi’는 “급한 불부터 끄자는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여기서 중지합니까? 언젠가 또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기 잇속 챙기는 정치 반복될 게 뻔합니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라지마라’는 “반대하는 여러분 너무 한 방향만 보고 가는 것 같습니다. 고유가에 물가 상승, 서민 경제 등 좀 더 깊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라고 밝혔다. 

글=이충형·이진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