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외국은 어떻게 했나-필리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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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년간 필리핀을 통치했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86년 민중봉기로 쫓겨난뒤 들어선 코라손 아키노 신정부는 출범후 즉각 마르코스 정권붕괴의 직접계기가 됐던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 암살사건을 재조사했다.
마르코스 정권당시 필리핀 법원이 파비안 베르 전육군참모총장등26명의 관련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조작된 쇼」라는이유 때문이었다.
먼저 대법원이 「아키노사건 판결무효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에따라 「3인 특별위원회」가 구 성됐다.그러나 암살사건 배후자며수천명의 반정부 인사를 감옥에 보내는등 마르코스 정권의 파수꾼노릇을 한 것으로 지목된 베르 장군이 마르코스와 함께 미국으로망명해 철저한 진상규명에는 실패했다.
신정부는 또 대통령 산하에 「인권위원회」와 「좋은 정부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마르코스 치하의 각종 인권탄압사례와 마르코스가 빼돌린 국민재산 환수작업에 나섰다.그러나 결과는 미미했다.재산환수를 위해 35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했 고 이같은 노력으로 마르코스 이름으로 스위스은행에 예치된 4억7,500만달러(약 3,600억원)를 스위스 정부로 부터 환수받는 약속을얻어내는데 기여했을 뿐이다.또 권력남용 희생자가 1만여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뿐 인권탄압 관련인사의 처벌문제는 군부반발과 잦은 우익 쿠데타 기도로 실패했다.
이같은 미적지근한 과거 청산의 결과 마르코스(89년 하와이에서 병사)의 부인 이멜다는 귀국해 지난 총선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공식활동을 재개하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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