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걸스카우트’, 뛰고 … 깨지고 … 곗돈 찾아 삼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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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40대·60대 아줌마 셋에 철딱서니 없는 20대 아가씨 하나. 홈쇼핑 용어를 빌리자면, 남자배우 둘을 내세우는 이른바 ‘투 톱'이 주조를 이루는 충무로에서 영화 ‘걸스카우트'(감독 김상만, 5일 개봉)의 ‘기본구성'은 무모해 보인다. 여배우에게 세련된 명품을 입히고 들려 감각적인 대사를 읊게 하는 수월한 방법 대신, 이 영화는 험난한 길을 스스로 택한다.

무대는 서울의 한 달동네 봉촌3동. 인형 눈알 붙이고 일하는 마트에서 유통기한 지난 먹거리를 빼돌려 모은 곗돈을 떼인 네 여자의 ‘생계형' 추격전이 영화의 큰 줄기다. 여기에 세대별 아줌마들의 걸쭉한 입담,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는 액션이 비교적 차지게 따라붙는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영화 ‘걸스카우트’는 …

하루 벌어 하루 입에 풀칠하는 봉촌3동 달동네 아줌마들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계주 성혜란(임지은)이 돈을 갖고 튀었다는 것. 예순 넘은 나이에 백수아들 먹여 살리느라 마트에서 일하는 이만(나문희), 남편을 여읜 후 아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업전선에 뛰어든 봉순(이경실), 잘살아보겠다고 안 해본 일 없지만 실패만 거듭하는 이혼녀 미경(김선아) 등이 피해자다. 이들은 피 같은 돈을 찾기 위해 몸소 나선다. 골프장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박의 그날이 오기를 꿈꾸는 은지(고준희)도 합세한다.

그런데 혜란은 곗돈만 노린 게 아니었다. 사채업체에 다니는 애인 홍기(박원상)와 짜고, 사채업체가 챙긴 오피스텔 분양사기대금 22억원도 빼돌린다. ‘해결사’ 종대(류태준)가 이들을 쫓는다. 사기대금과 아줌마들의 곗돈이 얽히고설키면서 일은 복잡해진다.

‘걸스카우트’는 코미디 영화에서 배우들의 ‘앙상블’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실례다. 김선아가 이끌고 나문희와 이경실, 고준희가 적당히 ‘오버’하는 가운데 박원상·류태준·임지은 등 세 명의 실력파 조연이 뒤를 받쳐주는 조합은, 자칫하면 엇나갈 수도 있을 듯한 일대 소동을 비교적 잘 컨트롤한다. 쫓고 쫓기는 겹치기 플롯을 좀 더 세공해 코미디보다 범죄드라마 냄새를 풍겼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15세 이상 관람가.

김선아 일문일답
“운동화 구멍 나도록 뛰어”
‘삼순이’ 코믹 이미지 지워

우여곡절 끝에 자신들을 걸스카우트라 칭하게 된 이들의 단장 역할에 ‘삼순이' 김선아(33)만큼 맞춤한 배우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3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생활밀착형 연기의 한 정점을 보여줬던 그다. 삼순이의 코믹함을 걷어낸 이번 역할은 말보다 실행에 옮기는 행동파 여성 미경. 노란 봉고차를 몰고 다른 차를 사정없이 들이받는 일명 ‘360도 턴테이블 카 액션'을 보여주느라 운동화 양쪽에 구멍이 날 정도였다는 그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삼순이’를 기대한 관객들은 좀 당혹스러울 수 있겠다. 다른 배우들은 다 웃기는데 정작 김선아가 안 웃겨서.

“처음부터 감독님과 ‘김선아는 안 웃긴다’로 합의했어요. 미경은 애 딸린 이혼녀인 데다 먹고살기 위해 주식투자랑 옷장사 등 손 안 대본 게 없는데 줄줄이 말아먹은 여자예요. 가게 한번 내볼까 했던 곗돈을 떼여 세 여자를 이끌고 돈가방을 찾으러 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코맹맹이 소리로 웃겼다면 ‘걸스카우트 대 나쁜 놈들’의 구도가 흐트러졌을 거예요. 남의 코믹 연기를 내가 어떻게 받아주느냐가 포인트였고, 또 많이 배웠어요.”

-결혼과 육아경험은 없지만, ‘아줌마의 힘’에 대해 느낀 바가 있을 듯한데.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미경을 미혼이나 기혼이더라도 아이가 없는 역할로 설정하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작자와 감독님이 ‘혼자 벌고 먹고 쓰는 것보다 아이가 있어야 삶의 이유가 훨씬 절박해진다’고 하시더군요. 엄마들이란 자기 아이를 생각하면 피아노도 번쩍 들어 옮길 정도로 없던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미경의 추격이 불이 붙는 것도, 돈을 들고 튄 홍기(박원상)와 혜란(임지은)이 미경의 딸을 납치하면서부터니까요.”

-아줌마들의 영화다. 대사나 설정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미경이 마트에서 일하는 이만(나문희)에게 팬티를 선물하면서 ‘이제 빵꾸 난 거 그만 입고 새 거 좀 입어’라고 하는 장면이 좋은 예일 거예요. 자기 입을 것 먹을 것 아껴서 남편과 자식한테 조금이라도 더 해주려는 게 우리나라 아줌마들 마음이잖아요. 아무래도 여자가 넷이나 모이다 보니깐 촬영 중간마다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졌어요. 미사리 카페 앞에서 야영하면서 빨랫줄 매달아 옷 걸어놓는 장면도 그랬고. 세대별로 끈 팬티(고준희), 보통 삼각팬티(김선아), 흰 팬티(이경실), 구멍 난 사각팬티(나문희) 이렇게 네 명의 팬티를 다 걸자는 게 원래 우리들 의견이었지요. ‘19금(禁)’ 아이디어가 많아 반영이 못 된 게 아쉬워요.(웃음) 부대찌개 끓여 먹으면서 풋고추 가지고 농담하는 것도 원래는 수위가 더 셌어요.”

-미경의 옷차림이 상당히 현실적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줌마 복장은 ‘파마머리+몸뻬’가 보통인데.

“요즘 30대 아줌마들은 아무리 살림 형편이 좋지 않더라도 몸뻬 안 입어요. 영화 속에 나오는 제 의상이 티셔츠 3벌, 바지 2벌 정도인데, 감독님과 (손을 쩍 벌리며) 수십 벌을 여기부터 저기까지 늘어놓고 일일이 사진 찍어가며 고민했어요. 운동화에 구멍 난 이유도, 그 운동화가 재고가 단 한 켤레밖에 남아있지 않아 낡아도 갈아 신을 수가 없어서였어요.”

인터뷰 전날 ‘걸스카우트’ 시사회에 온 김선아의 어머니는 “영화 보면서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단다. 할리우드 식으로 물량공세가 뒷받침된 정교함은 덜하지만, 적어도 배우들이 몸을 사리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거친 액션 장면 때문이었다. 김선아는 인터뷰 도중 양쪽 복사뼈의 붓기가 그대로 굳어버린 다리와, 등 중간에 뼈가 튀어나온 왼손을 보여줬다.

“치료할 시간이 없어 그대로 놔두다 보니” 그렇게 됐단다. “‘예스터데이’(2002년) 찍을 때 하도 돌려차기를 많이 해서 골반 인대가 상했는데 지금까지 통증이 느껴져요. 감독님들은 저만 보면 달리게 하고 싶나 봐요. ‘잠복근무’(2005년) 때도 이번에도 줄곧 뛰었어요. “

-억대 출연료 받을 만하다는 생각, 솔직히 들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은 100%, 그 이상이라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요. ‘잠복근무’ 촬영장에서 제 별명이 ‘액션대마왕’이었어요. 뛸 때는 항상 발목보호대 하고, 손목에 압박붕대 둘둘 감고, 물파스 들고 다니는 게 기본이지요. 이번에도 시사회 후 ‘정말 힘들었겠다, 얼마나 아팠겠느냐’는 얘길 유독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 들으면 ‘아, 나 열심히 했구나’ 이런 뿌듯함이 드는 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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