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중풍] 밤낮 없는 일본의 서비스 … 주택가 어디에든 복지 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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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호보험 서비스를 받는 한 중풍환자의 생활시간표. 매일 아침 주간보호센터에 가는 시간이 분 단위로 명시돼 있다. 개호 사업소의 케어매니저가 노인이 기다릴 필요가 없도록 촘촘히 시간표를 짜준다.

일본에서 치매·중풍 노인을 위한 복지서비스는 밤낮 없이 돌아간다. 시 외곽은 물론이고 땅값이 비싼 시내 중심가에도 복지 시설이 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출동하는 야간대응형 개호센터, 동네 골목에 위치한 지역밀착형 주간보호센터, 시내 중심가인 시부야에 위치한 개호사업소를 찾았다.

◇“24시간 책임집니다”=지난달 13일 저녁 도쿄 오타구 오모리산노에 있는 야간대응형 방문개호센터. 70㎡(20여 평)의 좁은 공간이지만 노인들의 긴급한 필요를 24시간 해결하는 만능센터다.

이날은 헬퍼(도우미) 사토노 도우진·후쿠이 에이진이 근무 중이었다. 정직원 4명, 아르바이트생 6명, 전화상담자 1명이 3교대(낮 12시30분~오후 9시, 오후 9시~오전 6시30분, 오전 6시30분~오후 3시30분)로 서비스를 한다.

이곳은 인근 25개 가정과 ‘너스콜’(nurse call)이라는 벨로 연결돼 있다. 각 가정에 사는 노인이 한밤 중에 몸에 이상이 생겨 벨을 누르면, 센터 중앙컴퓨터에서는 “긴급 통보가 발생했습니다”란 음성이 나온다. 이 순간 팩스에서는 해당 가정의 노인에 대한 정보가 인쇄돼 나오고, 근무자는 각 가정을 표기해 놓은 지도를 확인한 뒤 뛰어나가 20분 안에 해당 가정에 출동한다.

긴박한 ‘너스콜’이 없어도 쉴 새는 없다. 미리 서비스를 약속한 가정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오전 1시·4시 등 3시간에 한 번씩 기저귀를 교환해주는 서비스, 잘 때 몸 위치를 바꿔주는 서비스, 물 마실 때 돕는 서비스 등 6건의 서비스를 해야 했다. 서비스를 신청한 이들은 치매와 중풍으로 기본 생활이 불편한 독거노인과 노부부가 대부분이다.

센터 서비스 가입비는 한달에 1072엔(1만720원). 한 번 출동 시 621엔(6210원)이 추가된다. 헬퍼 후쿠이는 “노인과 가족들이 밤에 편하게 잘 수 있고, 누군가 와줄 사람이 있다는 점에 안심이 된다고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네 골목 속 주간보호센터=지난달 12일 도쿄 도시마구의 한 소형 주간보호센터. 집 같은 구조에 125㎡의 아담한 시설에서 노인 6명이 둘러앉아 일본 전통 민요를 흥얼거렸다. 책상을 두드리면서 장단을 맞추는 이들의 상당수는 치매환자. 7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마사코(78·가명)도 옆에 앉은 손자 같은 헬퍼 도쿠나가(30)와 대화하며 즐거워했다.

케어매니저 후지이 요코(70)는 “이곳은 큰 시설은 아니지만 주택 골목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 부담없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용은 하루 6시간 이용에 1000엔(1만원)만 내면 된다. 아침에 직접 차로 데리고 온 뒤 목욕 서비스나 외식·쇼핑 장소까지 데려다 주는 외출 서비스가 있다. 이곳에서 만난 유노키 요시코(91)는 “3년 반 전부터 이 시설에 다니는데 컴퓨터도 배우고 수묵화 그리기 등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에 들어선 시설=지난달 14일 오전 도쿄 중심가 시부야구의 한 빌딩에 있는 개호사업소. 인근 빌딩 시가가 수십억원에 이르는 금싸라기 땅 위에 있다. 이곳의 케어매니저 고모리 게이코(57)는 “빌딩 주인이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아 싼 값에 입주해 있다”며 “어떤 곳에서든 개호사업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곳과 연결된 노인들 중에는 부유층이 많은 편이다. 한 달에 50만~60만 엔(500만~600만원)씩 부담하며 24시간 가정부를 고용할 능력이 있는 부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저소득층과 같은 개호사업소를 이용한다. 고모리는 “개호사업소에 소속된 케어매니저와 서비스가 좋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소속된 케어매니저는 상담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와 헬퍼 등을 연결해주고 생활 시간표를 만들어준다. 케어매니저 고오게쓰 에비코(57)는 “다양한 취미생활과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웃 주민들과의 만남도 주선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이진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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