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함께 보는 판결] 교통사고 합의한 뒤 후유증 생겼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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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자동차를 빼놓고는 현대인의 생활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당연히 교통사고도 늘고 있다. 교통사고 때문에 누구나 법률적 분쟁에 휘말리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산다고 할 수 있다.

교통사고가 나면 운전자 처벌이라는 형사적 차원과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이라는 민사적 차원의 법적 문제가 생긴다. 얼마 전 부산지법은 교통사고를 당한 지 5일 만에 80만원을 받고 합의한 뒤 후유증이 생긴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가해자 측이 2000만원을 추가로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피해자는 교차로 정지선에서 신호 대기 중 추돌당한 승용차의 운전자였다. 피해자는 경추 및 요추 염좌 진단을 받고 합의했는데, 나중에 척추운동장애가 생기자 추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사고 발생 후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단기간에 합의했다는 점과 뒤에 일어난 손해를 예상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그 규모가 합의금을 훨씬 초과한다는 점을 근거로 당초의 합의로 후유장애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교통사고가 나면 가해자는 손해배상 문제 해결과 함께 형사처벌을 면하거나 가볍게 하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한다. 피해자로서는 재판을 통하는 것보다 신속하게 치료비를 조달하고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합의에 응한다.

합의는 통상 ‘이후 본건에 관하여 어떠한 사유가 있어도 이의 또는 민·형사상의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이런 합의는 민법상 화해에 해당한다. 합의한 뒤에는 한쪽의 당사자에게 착오가 있더라도 취소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민법 제733조).

문제는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장애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합의 당시에 예측하지 못한 중대한 후유장애가 생긴 경우에까지 위와 같은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피해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예외를 두어 후유장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한다. 이 경우 법원이 피해자를 구제하는 논리는 후유장애로 인한 손해배상이 합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거나, 화해의 전제된 사실이 아니어서 합의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합의와 관련해 이른바 형사합의금이 있다. 가해자 측이 형사 책임을 면하려고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형사합의금도 원칙적으로는 민사상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지급한 것이 된다. 즉, 피해자가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때 형사합의금이 손해배상금에서 공제된다. 피해자가 형사합의금을 받으면서 ‘위로금조’ 또는 ‘보험금과는 별도’라는 표현의 명시를 요구하기도 한다.

가해자 측이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보험회사도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합의가 복잡해진다. 피해자는 장차 보험회사를 상대로 손해액 전부의 배상을 청구하려고 가해자에게서 형사합의금을 받고도 영수증 등 수령 근거를 남기지 않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대법원은 가해자가 지급한 형사합의금도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의 일부로 보고, 가해자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이에 해당하는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피해자가 형사합의를 하면서 가해자로부터 그의 보험회사에 대한 보험금 청구권을 넘겨받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가 형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위로금 명목의 공탁을 하기도 한다. 법원은 처벌의 수위를 정할 때 공탁한 것을 반영한다. 하지만 피해자와 합의한 것보다는 덜 참작한다. 최근 부산지법은 중학생들을 때려 다치게 하고 적지 않은 돈을 공탁한 의사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공탁금의 규모보다는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2008고단591).

임정수 변호사 법무법인 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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