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쿨하게 살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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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12면

88세의 할머니가 쓴 책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솔직히. 삶의 지혜란 이름으로 하나마나 하거나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겠지 하는 지레짐작까지 했다. 그런데 미쓰다 후사코란 이 일본인 할머니, 대단했다. 50세에 남편을 잃은 뒤 남편 상사의 주선으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15년간 일하며 딸 하나를 키워 결혼시키고 나서 혼자 살던 중 신문 투고가 계기가 되어 방송에도 나가고 책까지 쓰게 됐다. ‘50세부터의 만족생활’이란 원제는 번역판에서 『50세에 발견한 쿨한 인생』(기파랑)으로 바뀌었는데 이 제목이 내용에 훨씬 어울린다. 깔끔하고 씩씩하고 건강한 할머니를 보면 ‘정말 이렇게 늙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지금은 96세라니 40여 년간 홀로 산 이 할머니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루하루를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는 비결은 ‘남에게도 돈에도 의지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이것이 어찌나 철저한지 여느 할머니 같으면 물고 빠느라 정신이 없을 손자와도 거리를 둔다. “상대가 손자이건 누구건 간에 남에게서 삶의 보람을 찾으면 반드시 그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자신을 기대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럴 염려는 없다”며 댄스를 배우고 15년에 걸쳐 일본 고전 『겐지 이야기』54권을 원문으로 독파하는 등 자기 계발에 몰두한다.

돈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더하다. 남편 퇴직금으로 집을 마련했고(지은이는 이 점을 수차 강조한다) 빠듯하지만 연금이 나오는 덕분인지 “소 한 마리를 먹을 것도 아니고…”라며 노후를 위해 수천만 엔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큰소리친다. 자기 집이 있고 식비만 해결할 수 있다면 살 만하다는 이야기다. 돈을 모을 수는 없지만 돈 때문에 쩔쩔맬 일도 없다는 이 할머니, 할부나 택시는 절대로 이용하지 않는단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 경조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쓸데없는 교제를 줄였다는 데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의 주장이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라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굳이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방송에 출연해서도 상대 남자에게 “저런 깔끔하지 못한 사람은 싫다”고 공언하는 등 마음 가는 대로 사는지 모른다.

실버 산업 붐을 타고 노인들을 겨냥한 책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대부분 재테크에 관한 책들이다. 은퇴 시에 얼마나 필요하니 부동산이며 펀드에 언제, 어떻게 투자해야 한다는 등 온통 노후자금 마련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과연 돈만 있으면 우리의 노후는 안녕할까.

게다가 의무적으로 재산 공개를 해야 하는 위치에 오를 정도가 아닌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은 그런 자금 마련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 책의 지은이인 할머니처럼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가진 것으로 즐기는 수성(守成)의 노하우를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중앙일보 출판팀장을 거친 ‘책벌레’ 김성희 고려대 언론학 초빙교수가 책읽기의 길라잡이로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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