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묻는다>실천승가회 一門스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벗은 나뭇가지에 금바람이 분다(體露金風)」고 했다.나무는 봄의 향기,여름의 무성,가을의 결실을 스스로 즐기기도 하거니와다른 목숨달린 것들과 그 기쁨을 나누는 데서 존재의 가치를 찾는다.종교가 이와같아 종교인들은 남과 더불어 살 기 위해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다.이 혼탁한 세상을 「구하기」위해 정진하는 종교인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편집자註] 일문(一門)스님은 속(俗)나이 36세의 젊은 스님이다.대학2년때 요양차 화엄사에 갔다가 눌러앉았다.삭발하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다니면서 불교운동.사회민주화운동의 일원으로 합류했다.대승 실천에 앞장서는 법성스님을 스승으로 생각한다.젊고 평범한 스님이기에 오히려 종교인의 본 모습을 더 잘 알 것같았다. 「크게 어리석은 사람」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극에대해 먼저 얘기가 시작됐다.옛 선비들은 우(愚)니 치(癡)따위한자(漢字)로 자신의 호(號)를 삼은 경우가 많았다.명리에는 바보가 되고,진리에는 바보가 되지말자는 자경(自警)의 의미였다.『자기 참회운동을 제안합니다.이 땅의 부정구조에는 거의 모든어른들이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러니남들만 욕해서는 해결이 안됩니다.철저한 자기 반성,참회가 요구되는 때입니다.이 참회에는 대통령이든 스님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일문이 불교개혁운동에 나선 것도 이같은 자기반성이 계기가됐다.5공말 6공초 민주화운동에 불교계도 동참키 위해 성명서를들고 불국사 강원을 찾았다.그때 어느 스님이 『불교계 내부에 문제가 더 많은데 어찌 세속의 문제에 먼저 나서는 가』하며 서명을 거부했다.궤변같았으나 깨달은 바 있어 집안 개혁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반성만 해서는 화평한 세상이 오지 않습니다.
반성의 기조 위에서 서로서로 남을 위해 진심으로 공양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 살기 좋은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젊은 수행자의 말치고는 거창하다.본인은 그렇게 하느냐는 물음에 싱긋 웃는다.아직 멀었다는 뜻이리라.
어떻든 이 말은 대승적 자세의 요체다.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깨달은 마음이다.깨달았기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남을 사랑하다보면 절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수행 공간이 산중(山中)에만 있지않고 일상사에 있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이 지점에서 승(僧)과 속의 경계가 사라진다.머리깎은 사람이나 기른 사람이나 공부하는 목적은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그러면 왜 머리를 깎았습니까.승려들은 사실 의.식.주에 관한 생산을 않는 사람들인데.
『스님 일도 직업입니다.세상사람들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는 직업입니다.세상사람들이 즐겨하는 것들을 멀리하고,그들보다 좀 더고행을 자청하는 이유는 마음의 양식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그러니까 금욕의 고행을 즐겨 이겨내는 스 님들이 직업정신에 투철한 스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철스님을 예로들었다.성철의 가르침은 「남을 위해 기도하라」로 집약된다.그의누더기 장삼,검정 고무신,어린이 밥공기의 소식(小食)은 이제 세상이 다 안다.『쌀 한톨에 우주적 노력이 들어있다』며 그는 음식을 남기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어느 여름날 해인사에 공부하러 온 대학생들이 수박을 나눠먹고 붉은 속살이 조금 남은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이를 안 성철은 노발대발,기어이 그것을 씻어 먹게했다).
『개혁운동한다고 공부를 좀 소홀히 했습니다.중된지 벌써 10년째인데 지난 여름 겨우 두번째로 해인사에서 3개월간 결제(선방에서 꼼짝않고 공부하기)에 들어갔습니다.그때 아침.점심만 먹고 저녁은 안먹는 「오후 불식」을 했습니다.배가 고플수록 밥의소중함을 깊이 깨달았습니다.밥뿐이 아니었습니다.남이 만든 것,남이 먼저 배운 것 일체가 얼마나 나를 위한 것들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자연히 불필요한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아무래도 다시 盧씨 문제로 돌아간다.
『그는 사람이냐,돈이냐에서 돈을 택했습니다.몸이냐,정신이냐에서 몸을 택한 것입니다.정신의 공허감을 돈으로 치장하려 했을 것입니다.
***매이지않는 自由 즐거워 성철스님이 왜 당신을 보려면 3,000배를 요구했는지 아십니까.절을 1,000번쯤 하면 온 몸이 쑤시는게 그 정도도 못견뎌내는 자기 몸이 싫어집니다.속된것에 대한 집착심이 자신도 모르게 없어지기 시작합니다.대신 정신이 일어나지요 .』 실례의 표현이지만 돈을 향해 절하는 盧씨의 모습이 상상된다.그가 만일 돈에 대해 1,000배쯤 했으면돈이 싫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스님생활의 즐거운 점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가끔 여자 생각도 날텐데.
『훨훨 나다닐 수도 있고,꼼짝않고 공부할 수도 있고,한마디로매이지않은 자유가 좋습니다.여자요.전에는 길을 가다 여자를 보면 외면했습니다.이제는 그냥 아릅답게 느껴요.손잡고 가는 가족을 보면 평화를 느낍니다.자연스런 감정이 좋습니 다.대신 몸을통제합니다.』 일문스님은 현재 파주 보광사에 머무르며 실천승가회의 무크지인 「화두와 실천」의 편집을 맡고있다.겨울 안거가 시작되면 불국사쯤으로 떠날 예정이다.
이헌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