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태아보험', 보상은 출산해야 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에 사는 주부 A씨는 결혼 4년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기쁨도 잠시 A씨는 임신 23주차,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서 태아를 유산했다.

이에 태아보험에 가입한 A씨는 유산에 따른 보상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대전에 사는 주부 B씨의 경우 임신 6개월일 때 뒤에서 들이받은 차로 인해 골반골절 진단을 받고 태아를 유산했다.

그러나 가입보험사는 태아 유산에 대한 손해배상과 위자료를 요구하는 B씨에게 태아는 보상 기준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태아보험? 유산 시 보상 안돼

이처럼 자동차사고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등 예상치 못한 사고로 태아를 유산할 경우, 태아의 사망보상을 받으려면 과연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할까.

대부분의 보험사는 민법상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인(人)보험'의 대상으로 적용받으려면 출생신고를 한 사람이어야 한다. 즉, 태아라도 출생신고가 안되면 보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

때문에 자의적인 낙태가 아닌 사고로 태아를 잃은 경우라도 태아 사망은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29일 현대해상 관계자는 “차 사고로 유산한 경우라면 산모에 대한 치료 실비는 지급하지만, 이외의 태아 사망에 대한 보상금이나 위로금은 지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통상 보험의 개념이 실손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에 유산이 되면 자동으로 보험계약이 무효가 된다는 것.

삼성생명 관계자도 “태아 때부터 보험가입을 할 수 있지만, 때아 때 보험적용이 안되는 것은 여러 변수에 대비해 출생 직후부터 적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금호생명 관계자는 “아동보험 자체가 사망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이는 유괴 등 아이가 보험에 악용될 소지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아보험도 태아 때 가입은 가능하지만 이는 유전적 질환 및 백혈병 등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일 뿐, 모든 보상은 출생 직후부터 적용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에 귀속된 태아, 무조건 보상해야

그러나 '태아보험'이라는 말만 듣고 가입한 부모들은 사고 유산일 경우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때문에 법적으로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 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와 보험사간 보상관련 논쟁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최근 법원에서는 "임신 기간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속속 내려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몇 년간 법원에서는 "임신 중 교통사고로 인한 유산이 부모의 상실감 등 심적 고통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며 엄마 보상금에 귀속해 유산으로 인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적지 않았다.

일례로 임신 9개월 여성이 교통사고로 자연분만 시도 중 아이가 사망하자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소송결과 법원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확실해 보인다며 위자료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 이는 엄마의 고통에 대한 위자료일 뿐이다.

현재까지 헌법에서는 태아를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태아 사망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형사적 책임이나 배상이 필요없기 때문.

이와 관련 법률사무소 스스로닷컴 한문철 변호사는 "교통사고로 인한 태아사망이 확실한 경우는 임신 개월수에 따라 위자료가 달라지는데, 이는 태아사망으로 인한 소송까지 이어졌을 경우에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즉, 태아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보험사는 위자료 및 손해배상 부분을 알아서 책임지지 않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태아가 출생해야만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민법상 규정은 있지만, 태아는 부모에 귀속됐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위자료 및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또 "태아보험이란 말을 사용해 태아 가입은 허용하면서, 태아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