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50. 리더와 챔피언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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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 대학농구의 명장(名將) 짐 캘훈(코네티컷대)의 이름을 딴 '우승의 법칙'이다. 1999년 코네티컷대학을 미 대학농구 정상에 올려놓은 캘훈 감독은 ①팀의 중심이 되어줄 탁월한 선수 ②고참 선수의 리더십 ③단기전에서 상위권 진출 경험 등 세 가지를 '챔피언의 법칙'으로 꼽았다. 그는 올해 미국 대학농구 64강 토너먼트를 앞두고 '파이널 포'로 불리는 4강을 자신했다. 자신의 팀이 이 세 가지를 만족시키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의 장담대로 코네티컷대는 '정글'에서 살아남아 가장 먼저 4강에 올랐다. '캘훈의 법칙'이 들어맞은 것이다.

뜬금없이 농구 얘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한국프로야구에서 '김재박의 법칙'을 말하기 위해서다. 정규시즌 개막을 앞둔 현대 김재박 감독에게 '우승의 법칙'이 뭐냐고 물었다. 김감독은 지난 6년간 세 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1996년 현대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현역 최고 승률(0.571)을 자랑하고 있다.

"우선 정규시즌에서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줄 기둥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둥을 중심으로 주전들의 공백이 생겼을 때 자리를 메워줄 백업이 튼튼해야 합니다. 그 정도면 4강 팀은 됩니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해서 강팀들끼리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챔피언의 법칙'이 있다면 베테랑의 리더십과 집중력입니다. 지난해 현대가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이겼던 것도 결정적인 순간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선수가 있었고, 집중력에서 앞서 실수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김재박의 법칙'과 '캘훈의 법칙'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리더의 중요성'이다. 여럿이 힘을 모으는 '팀'이 경쟁을 펼칠 때, 리더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그 팀의 방향타가 되어주고, 흔들릴 때 앞장서서 중심을 잡아주는 그런 경험 많은 리더가 있어야 챔피언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강조한 '시니어 리더십'을 올해 프로야구에 적용시켜 보자. 고참이면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각 팀의 리더를 보면 근소하지만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투수-타자순). 이강철-이종범(기아), 정민태-이숭용(현대), 이상훈-김기태(SK) 등 세 팀의 리더들은 어느 팀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김현욱-양준혁(삼성), 류택현-이병규(LG), 송진우-이영우(한화)는 앞의 세 팀에 비해 약간 처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권명철-안경현(두산), 가득염-박현승(롯데)의 무게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로 평가된다. 리더십이 물론 성적의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캘훈과 김재박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팀의 중심선수가 경기를 이끌어가고, 위기나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리더십을 갖춘 고참이 팀을 받쳐주며, 팀 전체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작은 플레이 하나에 최선을 다할 때 챔피언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야구건, 농구건 또는 스포츠의 범주를 벗어나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가슴에 새겨둘 만한 대목이다. 특히 요즘 우리가 겪는 '리더십 혼돈의 시대'에는.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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