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민노총과 한나라당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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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터넷시대에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정말 맞나보다. 한나라당.민주당 두 야당의 형국을 보니까 딱 들어맞는다. 누군들 이 지경까지 될 줄 예상했겠는가. 이들의 붕괴는 좋은 교훈거리이기도 하다. 자기도취에 빠져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면 그 뒤끝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제아무리 막강해도 상식을 벗어나 계속 무리수를 두면 저렇게 속절없이 망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가르쳐 준 셈이다. 한나라당.민주당만이 아니다. 조심해야 할 다음 차례는 어딜까. 민주노총도 비슷한 맥락에서 불길한 조짐을 보이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전혀 다른 조직이지만, 묘하게도 최근의 행태는 매우 유사하다. 변화를 외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머지않아 한나라당 짝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보수정당을 자처해온 한나라당이 보수세력으로부터까지 배척당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운동의 사령탑 민주노총이 그들의 지지세력으로부터까지 외면당하는 사태가 조만간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 자기도취에 빠져 계속 무리수

어느새 민주노총은 한국 사회의 엄청난 존재가 됐다. 기업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눈치를 봐야 한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주도세력의 일각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노총 노선이 어찌 갈지, 위원장은 어떤 인물인지에 외국기업은 물론이고 세계 언론들까지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세상이 됐다. 정부의 노사정위원회의 운영조차 이들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 참여도 손 안 가는 데가 없다. 이라크 파병과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에 나섰던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최근 탄핵 문제에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주노총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내걸고 산하 사업장별로 잔업 거부 투쟁 지침을 내린 것이다.

이쯤 되면 민주노총은 과연 무얼 하는 기관이고, 대체 대통령 탄핵 문제와 개별 기업의 잔업 거부가 무슨 관련이 있기에 이러느냐는 의구심이 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이런 지시가 척척 하달돼 매주 수요일 수많은 기업이 잔업을 못하게 됐다고 치자. 그래서 발생하는 해당 기업의 손해는 누가 책임질 것이며, 그 손해는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가.

이런 행보는 한국 노동운동의 정체성마저 의심케 하는 일이다. 탄핵반대에 연계시켜 잔업 거부투쟁을 하는 것은 법으로도 이상하고 상식에도 안 맞는다. 평소 민주노총을 아끼고 열심히 지지해왔던 사람들까지도 혀를 찬다. 민주노총 잘못 되길 바라는 기업 쪽 사람들만 즐겁게 해주는 이적수들이다. 누가 탄핵반대를 하지 말라고 했나. 누구든지 한마디씩 열을 올리고 어린애들까지 촛불을 들고 나서는 판이 아닌가. 그런데 왜 민주노총이 탄핵과 연관지어 생업의 현장인 직장 일을 하라 말라 하느냐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뒤 이어서 민주노총은 올해 단체협상에서 통일 문제까지 노사가 논의하도록 해놓고 있다. 기업 수익의 일부를 통일기금에 내놓게 한다든지, 북한 방문 재원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내용을 새롭게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노동조합의 정의부터 고쳐야 할 판이다.

*** 노조도 구조조정해야 살아 남아

盧대통령도 "나도 달라졌고, 노조운동도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이 같은 盧대통령의 충고가 진실로 노동운동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민주노총이 대통령의 충고에 조금이라도 유념했다면 탄핵반대 잔업거부 투쟁 같은 일은 결코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총으로선 사실 한가롭게 정치 간섭할 때가 아니다. 심각한 위기상황인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실업이 심각할 때 노조가 힘을 쓴 적은 일찍이 역사에 없었다. 노조활동에 최대 적이 실업임을 자신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웬만한 공장은 죄다 중국.인도로 도망가고, 새 공장을 지어도 사람은 없고, 비싼 기계뭉치만 잔뜩 들여 놓는 투자만 이뤄지는 현상이 줄여 잡아도 10년은 더 갈 것 같다. 일자리 창출의 중심이었던 제조업이 급속도로 쇠퇴해 가는 현실은 이미 굳어진 대세다. 민주노총은 바로 이런 위협적 환경변화를 극복해내는 새 전략 마련에 골몰해야 할 텐데, 여론이 등돌리는 일만 골라서 벌이고 있으니 참 딱하다. 노조도 살아 남으려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기업이 망하듯이 노조도 망한다.

이장규 경제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