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경제 살리기와 국민총행복(GNH)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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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36면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1년차 대통령으로는 프랑스 제5공화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성장률은 유럽 평균을 계속 밑돌고, 청년실업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자유화와 경쟁 도입을 공언하면서도 ‘프랑스의 영광’에 집착해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영어에서 따온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C’est l’economie, idiot)”라는 질타가 1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사르코지는 물론이고 프랑스 국민은 그들의 경제와 삶의 질이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국내총생산(GDP) 통계다. 프랑스의 GDP는 세계 6위(2006년 현재)다. 그러나 1인당 GDP는 미국(11위)과 영국(17위)보다 뚝 떨어진 24위다.

한 가닥의 위안은 유엔개발계획(UNDP)이 작성해 발표하는 인간발전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다. 인간의 잠재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와 능력 면에서 프랑스는 세계 10위로 미국(12위)과 영국(17위), 즉 앵글로아메리카 라이벌을 능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GDP 통계에 잘 반영이 안 된다면 공약에 쫓기는 사르코지 입장에서 다른 지표 개발을 고려해 봄 직도 하다. 그래서 그는 아마르티아 센과 조셉 스티글리츠 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에게 삶과 환경의 질을 포함해 측정 비교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 달라고 의뢰했다. 아마르티아 센이 누구인가. 프랑스에 ‘유리한’ 인간발전지수의 틀을 제공한 그에게 새로운 지수 개발을 의뢰한 것은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GDP가 한 나라의 진정한 웰빙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GDP 개념을 체계화한 사이먼 쿠즈네츠도 1934년 성장의 양과 질은 분명히 구분된다며 일찍이 웰빙의 척도로 GDP의 한계를 지적했다. 파리 시민이 지하철로 출퇴근하면 GDP에 잡히지만 걸어서 출퇴근하면 잡히지 않는다. 건강에 더 좋고 환경에 도움을 주는 데도 말이다. 인구 48만 명의 룩셈부르크는 1인당 GDP가 세계 최고이지만 인간발전지수는 18위다.

따라서 GDP를 보완 내지 대체하려는 시도와 연구 노력은 각국에서 앞다퉈 진행 중이다. 그 하나가 인구 68만 명의 히말라야 전통 불교왕국 부탄이 72년 선언한 국민 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 공식이다. 이때 행복은 정신과 물질 간의 균형, 그리고 도시화든 세계화든 무슨 개발이든 부탄의 전통·문화 및 환경과의 조화를 의미한다. 부탄은 가구당 소득이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지난 20년 동안 기대수명이 19세나 늘었고 국토의 자연 숲이 대부분 보존돼 있다.

지구상 가장 최근에 생긴 민주국가이고 외국 관광객도 제한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행복 공식은 규모가 훨씬 큰 나라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고 행복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측정하는 방법 또한 문제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닛(EIU)은 이런 난점을 의식해 현재의 삶에 만족을 느끼는 정도를 측정한 삶의 질 지수(Quality of Life Index)를 작성·발표 중이다. 2005년 순위는 미국이 13위, 프랑스 25위, 영국이 29위였고 석유 부국으로 1인당 GDP 세계 6위인 카타르는 삶의 질이 41위로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돈이 곧 행복은 아니고, 경제성장이 곧 웰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남미 국가 사람들은 그들이 처한 경제 현실보다 훨씬 더 행복해한다는 조사도 있다. 새로운 지표 개발에는 시간이 걸리고, GDP 대체까지는 못 가도 상당한 보완은 기대된다.

경제 살리기 공약으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경제성장률 수치에 과민한 것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먹거리 안전 등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국민적 욕구를 제쳐 두고 20세기적 개발철학으로 21세기 나라 경제를 요리하려 든다면 사르코지처럼 가장 인기 없는 1년차 대통령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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