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케인도 “목사님 때문에 …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기독교 복음주의 지도자 존해기 목사<左>가 올 2월 한 기자 회견장에서 화합을 과시하면서 서로를 치켜세우고 있다. [AP=연합뉴스]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괴상한 목사 문제다. 그는 22일 기독교 복음주의 지도자로, 텍사스주 코너스톤 교회 창설자인 존 해기 목사의 지지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냈다. 공화당 지지층인 복음주의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매케인은 올 2월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끝에 해기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런 그가 일부 복음주의자의 이탈을 각오하고 해기를 포기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유럽에서 추방한 것은 신의 뜻”이라는 해기의 발언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얼마 전 정신적 스승이던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와 절연했다. 라이트 목사가 “갓 댐 아메리카(빌어먹을 미국)” “미국 정부가 흑인을 말살하기 위해 에이즈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렸다”는 등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표가 달아나는 걸 막기 위해 라이트를 내친 것이다. 그런데 매케인이 똑같은 처지가 됐다.

진보 성향의 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이날 1990년대 해기의 설교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공개했다. 거기엔 “신은 총을 든 사냥꾼을 보냈다. 히틀러가 그 사냥꾼이다. 신이 (유대인에 대한) 사냥을 허락한 건 유대인을 이스라엘 땅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등의 설교가 담겨 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발언이 알려지자 매케인은 “미친(crazy) 소리”라며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기가 나를 지지했을 땐 그런 설교를 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매케인은 해기와의 관계가 오바마-라이트의 관계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해기는 내 목사가 아니며, 나의 정신적 조언자도 아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그의 교회에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노스 피닉스 침례교회에 다니며, 나의 목사는 댄 이어리다”라고 강조했다.

매케인이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은 대선 승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가톨릭과 유대인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해기는 지난달엔 가톨릭을 “사교”라고 맹비난했다가 비난을 받자 가톨릭에 사과했다. 당시 매케인은 “해기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다수의 가톨릭 신자는 “절교하라”고 매케인에 요구해 왔다. 매케인은 미국 인구의 약 25%인 가톨릭 신자들과, 인구는 전체의 2.1%로 많지 않으나 정치권에 영향력이 큰 유대인 표를 얻기 위해 과감하게 해기와의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한편 오바마는 이날 플로리다 유대인 교회를 찾아 “대통령이 되면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겠다”고 약속했다. 유대인은 가톨릭 신자와 함께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직 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가 “이란 대통령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고 한 데다 라이트가 “이스라엘은 테러를 조장하는 나라”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