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밑천 안 드는 소프트웨어 산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소프트웨어(SW)를 주로 공부하는 KAIST 전산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계속 줄고 있다. 사정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회사 임원들을 만나면 SW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SW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 줄어드는 데 반해 회사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SW는 관점에 따라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컴퓨터 제품’이다. SW는 컴퓨터가 수행해야 할 명령어를 수록한 프로그램이다. 하드웨어에 대비되는 말로, SW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의 정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SW의 주 기능은 컴퓨터가 효율적으로 일하게 명령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컴퓨터가 효율적으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소프트웨어 제품의 생명이다.

SW의 두 번째 특성은 ‘일의 절차‘다. 컴퓨터에서 실제로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은 SW다. 그런데 컴퓨터가 우리 생활 곳곳에 이용되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이 SW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차표 예약 때도, 인터넷 뱅킹 때도 SW가 정해주는 절차에 따른다. 회사의 회계관리나 전자결재도 어느 SW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한국의 거의 모든 회사들이 외국 SW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들이 정해 놓은 절차에 따라 일을 하는 셈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이런 SW를 만들어주고 관리해주는 외국 회사에 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

SW의 세 번째 특성은 사회의 ‘인프라’다. 현대 산업은 모두 컴퓨터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SW가 빠지면 사회와 공장은 올스톱이다. 철강산업을 ‘기간 산업’이라 부르고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 한다. 그만큼 이것들이 다른 산업에 기본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SW는 사회의 쌀이고 기간산업이다. 즉 사회의 인프라라 할 수 있다. 철과 반도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 산업제품 중 철이나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SW가 없어도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은행이나 영화, 게임, 휴대전화도 좋은 SW가 없으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 SW의 좋고 나쁨은 제품의 질에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제품 중에 미제가 좋은 것은 별로 없다. TV·휴대전화·자동차·카메라도 미제는 별로다. 그러나 비밀이 있다. 바로 보이지 않는 SW다. 이런 SW를 거의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비싼 값을 받으며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는 1980년대부터 이의 집중 육성 결과, 이제 세계 제2의 SW 수출국이 되었다. 유럽 최빈국이던 아일랜드는 SW 산업에 집중해 이제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의 나라가 되었다. 독일의 세무서는 인증된 회계SW를 사용하면 그 결과를 자동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SW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중국은 산업의 독립을 위해 자국 SW 육성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업의 인프라인 SW 분야를 우수인력이 기피한다니 앞날이 걱정이다. SW 기술이 없으면 제철소 운영 시스템을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없고, 반도체와 자동차 회로를 우리 손으로 설계할 수 없다. 특히 외국 해커들과 싸우는 ‘사이버 전쟁’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이다. 이제 SW는 철과 반도체 같은 기간산업이며 동시에 방위산업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더욱이 SW 산업은 공장도 자원도 필요없다. 머리만 있으면 되고, 사무실 전기료와 수도요금만 내면 된다. 이것처럼 우리 처지에 맞는 밑천 안 드는 산업이 또 어디 있을까. ‘자원 무기화’ 시대를 맞아 SW 인력 양성이 더욱 절실하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