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114) 서울 서초갑 한나라당 이혜훈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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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제 인생을 걸고 올인하는 겁니다. 정치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지만, 그 결심하기가 퍽 어려웠어요. 10개월 이상 고민했죠. 율사 출신이 아닌 이상 사표를 내고 나면 다시 옛 직장으로 돌아가기 어렵거든요.”

서울 서초갑에서 출사표를 던진 한나라당 이혜훈(40) 후보는 현역인 박원홍 의원을 제치고 단수후보로 확정됐다. 더욱이 여성 신인이다. 한나라당 여성 지역구 후보자 7명 가운데 4명이 현역 의원이고, 나머지 3명이 전문가 또는 당직자 출신이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이 야심차게 전진배치한 여성 전문가. 이번에 한나라당이 기획공천한 서울 강남갑·을과 서초갑·을은 전통적인 한나라당 우세지역이다. 당초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던 이 후보는 마음을 바꿔 서초갑에 뛰어들었다.

“개혁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신인을 내세워 당 이미지를 바꾸자는 물갈이 바람이 불었습니다. 저의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이곳에 공천을 신청하게 됐죠.”

이 후보는 여성으로는 드물게 ‘경제 전문가’로 손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미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영국 레스터대 경제학 교수 등을 지냈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UN 정책 자문위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한국대표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로 있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건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특보를 맡으면서다. 노태우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낸 고 김태호 의원(4선)의 맏며느리이기도 한 그는 정치인 집안이라 정치가 낯설진 않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2002년 김 의원의 별세 후 시아버지의 지역구인 울산 중구에 조직책 신청을 하기도 했다.

경제통인 그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을 버려라”고 충고했다. 특히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청년실업은 이대로 가다간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면 일시적으로 실업이 완화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이 자생력을 잃게 된다는 것. 따라서 총선을 앞두고 선심용으로 일자리 몇 만개를 창출하는 대증요법을 쓰는 건 노 정부 최대의 실책이 될 거라고 경고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살아나 일자리가 생겨나려면 근본적으로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시절 실패한 경제정책을 이끈 이헌재 경제팀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경제를 되살리는 데 주력해야겠죠. 많은 나라들이 3%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듯이 세계적으로 경제가 호전되고 있는 마당에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2.8~2.9%로 세계 평균에도 못 미쳤어요. 심각한 수준이죠.”

▶ 이혜훈 후보는 '참여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식의 대증요법을 쓰는 건 결국 실책이 될 거라고 경고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살아나고 기업들이 고용을 창출하려면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안윤수 월간중앙 기자

한나라당을 선택한 건 ‘시장경제 원칙을 신봉하고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당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성장과 분배 즉 복지를 서로 분리해 판단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진정한 사회복지를 이루기 위해선 경제성장이 우선돼야 하고, 성장을 발목잡는 복지정책은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국무총리실 노인보건복지대책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 등으로 있으면서 사회복지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며 복지정책은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할 때 효율성이 증폭된다고 주장했다.

“소외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리적·사회적·문화적 요인에서 오는 게 가장 큽니다. 시장경제 원칙이 잘 지켜지는 나라에선 잘 적응해 살아남는 계층은 능력을 더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도태계층은 ‘사회안전망’을 잘 구축해 구제하는 게 기본이죠. 자꾸 ‘분배’만을 강조하게 되면 시장경제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 후보가 출마하는 서초갑은 고학력 30~40대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주로 경제와 교육 문제. 이 후보 역시 지역 현안으로 학교부지의 마련과 스모그가 극심한 환경 문제 해결을 꼽았다. 그의 구호도 ‘클린 강남’이다.

이 후보는 이번 17대 총선을 통해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때 도입이 검토됐던 여성전용 선거구제에 대해선 그러나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시적으로 여성 정치인의 양적 확대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인 측면에선 오히려 여성들의 지역구 도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높다는 것. 특히 지역구에서 당선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여성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광역의 전용선거구로 차출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후보는 자신을 여성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에 도전하는 한 사람의 전문가로 봐 달라고 주문했다. 한나라당이 자신을 공천한 것도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전문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벗고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춘 40대의 정치 신인들을 이번에 대거 공천한 게 그 방증이죠. 정치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에 등원하면 ‘경제통’으로서 우리 경제를 살리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주 진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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