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跛行性 바로잡을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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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결국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됐다.이로써 盧씨는헌정사에서 파렴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고 범법자로 구속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커졌다.한국 정치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로서 이를 바라보는 심정은양면적이다.
한 나라의 정치사를 살펴보는 방법중 하나로 다소 「영웅사관」적이긴 하지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변천에 관한 「대통령사」를 짚어보는 방법이 있다.올들어 해방 50년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맞아 해방 50년사에 대한 새로운 긍정적 평가 들을 하고 있으나 현실은 그런 것 같지 않다.다섯명의 전임대통령중 내각제아래서 명목상의 대통령이었고 그것도 쿠데타에 의해 단명했던 윤보선(尹潽善)을 제외하곤 모두 불행한 길을 걸어야 했다.국민에의해 쫓겨나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이 승만(李承晩),술자리에서심복의 총탄에 쓰러진 박정희(朴正熙),백담사 귀양살이를 했던 전두환(全斗煥)으로도 모자라 이제 盧씨는 6공아래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신흥재벌」로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이다.
이는 고향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망치를 들고집없는 이웃의 집을 지어주는가 하면,세계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평화의 사자로 활약하고 있는 카터 전미국대통령등 다른 나라 대통령들과는 대조적인 불행한 우리의 현실이다.특 히 盧씨의 사법처리가 온 국민이 경축해야 할 해방 50년에 터져나온 것은 파행과 탐욕으로 얼룩져온 한국 정치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사건이라는 점에서 과거에 대한 뼈아픈 자기성찰과 21세기의 새로운 정치를 위한 과감한 자기혁신 을 우리 모두에게 촉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번 사건은 참담함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아직도 문제가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전직대통령을 법앞에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민주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특히 이 사건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무소불위(無所 不爲)의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결국 「시간은 국민편」이며 언젠가 법과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라는 점에서 모든 정치인들의 앞으로의 행태에 중요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이제 문제는 이번 사건이 보여준 이같은 희망스러운 면과 민주적 계기들을극대화해 그간의 파행성을 바로잡는 것이다.
우선 盧씨에 대한 엄정수사와 말 그대로 법에 의한 처리다.
둘째,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盧씨로부터 직접 정치자금을 받은바 없다는 해명을 넘어 기업등으로부터 자신과 측근이 모금한 대선자금과 盧씨가 민자당에 준 대선자금등 대선자금 전모를 공개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셋째,김대중(金大中) 새정치국민회의총재도 金대통령의 대선자금공개를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대선자금 전모를 공개해야한다.왜냐하면 盧씨의 20억원이 金총재의 대선자금 전부는 아닐것이기 때문이다.또 여소야대 시절 盧전대통령 이 약속했던 중간평가 연기와 5공청산 합의의 대가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풍문등과 관련해 盧씨와 全씨로부터 받은 다른 돈이 있다면 이를밝혀야 한다.문제의 20억원을 민주당인사들도 받아 썼다는 비열한 공세도 중단해야 한다.설사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이들은 그 돈이 盧씨의 돈인지 몰랐을 것이고 게다가 그 돈은 金총재의 대선운동을 위해 뛰라고 준 돈이기 때문에 이를 문제삼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김종필(金鍾泌)자민련총재 역시 문제의 100억원 계좌등 비자금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공멸(共滅)을 피하기 위해 정치권이 야합해 현수준에서 문제를 봉합해 버리는 것이다.이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점에서 「썩은 정치의 공멸」을 위해 국민이 일어서야 한다.그렇지 못할 경우 「썩은 정치」는 이 제 더이상 부패한 정치인들과 이들과 공생했던 일부 재벌들만의 책임이 아니라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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