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진단>왜 에로티시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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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성!역학 포르노그라피!』 『가슴이 예쁜 여자의 이불은 36.5℃』 『마릴린 먼로의 잠옷은 샤넬 NO5』 『내게 단 하나남은 것을 팔겠오』….
서울 시내 후미진 골목에 붙은 영화 포스터의 광고문안들.성적흥분을 자극하는 이 문구들에서는 과거와 같은「감춤의 미학」은 발견할 수 없다.
에로틱 스릴러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전세계를 휩쓴 폴 베호벤감독이 나체쇼 무용수들의 세계를 그려 미국에서도 17세 이하 관람 금지 판정이 내려진 『쇼걸』에 대한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판정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여 균동 감독의 『포르노 맨』과 강정수 감독의 『리허설』등 명실상부한 포르노급 영화가 준비되고 있다.
연극.영화에서 에로 문화의 표현영역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감춤의 미학」은 기능정지된지 오래며,「노출의 미학」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이런 상황에서 여배우의 전라(全裸)연기로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연극 『미란다』에 대해 지난20일 서울지방법원이 공연음란죄를 적용,유죄를 선고했다.우리 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에로티시즘이 「예술이냐,외설이냐」류의 낡은 틀을 무시하고 새로운 지평에서 자신의 미학을 제시하면서 그들의문화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9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민주와 반민주의 이분법적 대결이 사라지면서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이론의 시대가 끝나고,대신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고 있다고 진단한다.이처럼 민주적.진보적 신념들이 위협받게 되면서 새 로운 진보의 가능성으로 등장한 것이 대중문화다.
그런데 바로 이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화두가 다름 아닌 암묵적금기,즉 성(섹스)이다.이들에게 성은 단순히 「성기나 성행위의노출」이 아니라 「성」을 통한 「세상 엿보기」다.대중문화와 권력,성과 정치학을 연결시키고자 한 이들에게 성 은 현대 물신주의를 비판.조명하는 열쇠구멍이자 권력과 자본 지배의 해체를 겨냥하는 도구이기도 하다.이 지점에서 에로티시즘은 미학이기보다는사회학으로 자리잡게 된다.
성과 권력의 관계를 치밀하게 추적한 프랑스 탈구조주의 철학자미셸 푸코는 권력이 인간의 육체에 대한 금기에서 구체화된다고 주장했다.그는 권력이 어떤 수로(水路)를 통해,그리고 어떤 언어의 흐름에 따라 매일 매일의 쾌락 속을 뚫고 들어가 성을 통제하게 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성을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구조의 핵으로 파악한 우리나라의에로티시즘 이론도 이런 인식에 기대 기존의 정치학.사회학의 변두리에 밀려있던 섹스라는 가장 사적(私的)인 분야를 사회적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상업화 논쟁을 넘어서 그러나 문제는 성이라는 「상상적 공간」이 철저하게 상업화할 가능성이다.이 상상적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소비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8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재화에 대한 욕망을 확대되었으며,그것은 거꾸로 새로운 구매력을 확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여기서대중문화를 관통하는 에로티시즘이 상상적 욕망의 자극,즉 새로운구매력 창출이라는 자본의 재생산 구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광고 에로티시즘.『광고와 에로티시즘』(미진사 刊)의 지적처럼 광고 에로티시즘은 무의식을 신화화하고 성적충동을 자극해 소비와 연결시킨다.뿐만 아니다.상업주의는 컴퓨터문명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상상의 공간에 도 침투,사실상성의 상업화에 의해 추동하고 있다.
이런 성격 때문에 권력의 해체와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현대 에로티시즘이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구조적 억압을 외면한 채 사실상 인간의 상상적 공간까지도 물신주의에 투항시키는 결과를 몰고온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
『포르노맨』의 감독 여균동씨는 문화적 진보를 빙자해 상업주의와 야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 대해 『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이 또 상품화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사회의 논리가 문제』라며 『이런 조건에서 상업화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하고 항변한다.
문화이론 연구자인 강내희 교수(중앙대 영문과)는 『권위주의는상업주의적 욕망만 증폭시킨 반면 다른 욕망의 실현은 억압해왔다』고 진단한다.나아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나 펠릭스 가타리의 이론을 원용해 『에로티시즘이 권위주의.상업 주의를 해체.지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도덕주의와 상업주의를 경계짓는 차원을 넘어 욕망의 근본적 실현이 가능한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감독의 지적처럼 그것으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순환괘도를 벗어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욕망 그 자체보다 그것이 어떤 사회적 형식 속에서 실현되는지가 문제라면,상업주의적 권력의 개입을 방조하는 대중의 무의식적 상황을 의식화 하기 위한 사회 전체의 반성과 실천이 필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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