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국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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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국엔 나이 든 남동생에게 몸을 주려 했던 누나 이야기가 있다. 가난하면서 능력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장애까지 겹쳐 늘 그늘 속에서 혼자 살아온 남동생. 장가는커녕 마을 주민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움츠리고 쪼그라들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던 그 동생이다. 타향에서의 오랜 시집생활 끝에 잠시 동생을 보러 왔던 누이. 이불이 하나만 있어 자신은 부뚜막 옆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초로의 동생에게 그녀는 속옷을 풀어헤친 채 이렇게 외친다.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충 한 번만이라도 여자의 맛을 느껴 보렴.” 그러나 동생은 도망치듯 문을 뛰쳐나가 비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 작가 한사오궁(韓少功)이 지은 『마교사전(馬橋詞典)』에 나오는 대목이다. 후난(湖南)성의 외진 지역인 마교에서 실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모아 소설 형식으로 펴낸 작품이다. 장가 못 간 남동생에게 ‘여인’의 역할을 하려 했던 누이의 심성을 좋게 여길 사람은 적겠지만, 지독한 가난과 고단한 삶 속에 녹아 있는 정리(情理)의 세계는 자못 큰 공감을 가져다 주는 장면이다.

중국인에게는 전쟁과 재난·궁핍이 불러일으킨 환난(患難)에 관한 의식이 크다. 큰 땅에서 사람이 제 욕심을 채우고자 일으킨 수많은 전쟁, 시도 때도 없이 밀어닥치는 흉년과 홍수의 갈마듦. 펄벅의 『대지』에서 그런 장면은 여과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됐지만 그 연원은 사실 매우 오래 됐다.

‘시의 성인(詩聖)’으로 추앙받는 두보(杜甫)는 그 작품에서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청해(靑海) 땅 끝을!/ 예부터 백골을 거둬주는 사람 없어) “새 귀신 원망하고 묵은 귀신 통곡하니/ 흐리고 비 뿌리면 들리는 소리 훌쩍훌쩍(新鬼煩寃舊鬼哭, 天陰雨濕聲<557E><557E>·지영재 편역 『중국시가선』)”이라고 했다. 막 생명이 다한 귀신과 먼저 저승에 닿은 귀신이 함께 운다는 정황. 전쟁과 기근으로 스러진 생명의 부르짖음이 참담하고 처연하기만 하다.

재난이 가져다 주는 참화에 늘 전전긍긍했던 중국인들. 그들은 급기야 “태평성세의 개로 태어날지언정, 난세의 사람으로는 살지 말자(寧爲太平狗, 莫作亂世人)”는 유명한 맹세를 남긴다.

중국인이 요즘 쓰촨(四川)의 대지진으로 느끼는 아픔은 그 외형의 크기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였던 고통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이해할 대상이다. 특히 쓰촨의 오지에서 빈곤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주 피해자다. 그를 지켜보는 일반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는 두보의 처절한 외침과 차라리 태평시절의 개로 살자는 비감 어린 원망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 아픔을 이해하고 덜어주는 데서 이웃인 한국의 역할을 찾아보자.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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