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한사오궁(韓少功)이 지은 『마교사전(馬橋詞典)』에 나오는 대목이다. 후난(湖南)성의 외진 지역인 마교에서 실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모아 소설 형식으로 펴낸 작품이다. 장가 못 간 남동생에게 ‘여인’의 역할을 하려 했던 누이의 심성을 좋게 여길 사람은 적겠지만, 지독한 가난과 고단한 삶 속에 녹아 있는 정리(情理)의 세계는 자못 큰 공감을 가져다 주는 장면이다.
중국인에게는 전쟁과 재난·궁핍이 불러일으킨 환난(患難)에 관한 의식이 크다. 큰 땅에서 사람이 제 욕심을 채우고자 일으킨 수많은 전쟁, 시도 때도 없이 밀어닥치는 흉년과 홍수의 갈마듦. 펄벅의 『대지』에서 그런 장면은 여과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됐지만 그 연원은 사실 매우 오래 됐다.
‘시의 성인(詩聖)’으로 추앙받는 두보(杜甫)는 그 작품에서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청해(靑海) 땅 끝을!/ 예부터 백골을 거둬주는 사람 없어) “새 귀신 원망하고 묵은 귀신 통곡하니/ 흐리고 비 뿌리면 들리는 소리 훌쩍훌쩍(新鬼煩寃舊鬼哭, 天陰雨濕聲<557E><557E>·지영재 편역 『중국시가선』)”이라고 했다. 막 생명이 다한 귀신과 먼저 저승에 닿은 귀신이 함께 운다는 정황. 전쟁과 기근으로 스러진 생명의 부르짖음이 참담하고 처연하기만 하다.
재난이 가져다 주는 참화에 늘 전전긍긍했던 중국인들. 그들은 급기야 “태평성세의 개로 태어날지언정, 난세의 사람으로는 살지 말자(寧爲太平狗, 莫作亂世人)”는 유명한 맹세를 남긴다.
중국인이 요즘 쓰촨(四川)의 대지진으로 느끼는 아픔은 그 외형의 크기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였던 고통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이해할 대상이다. 특히 쓰촨의 오지에서 빈곤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주 피해자다. 그를 지켜보는 일반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는 두보의 처절한 외침과 차라리 태평시절의 개로 살자는 비감 어린 원망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 아픔을 이해하고 덜어주는 데서 이웃인 한국의 역할을 찾아보자.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