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부패 "單任"의 검증장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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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 발각으로 노출된 한국의 정치부패 문제는 일본에서도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한국보다 더길고 뿌리깊은 정치부패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새삼 의문을 가질만한 대목이 많은 모양 이다.만나는 일본인들이 묻는 질문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한국의 대통령직이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많은 뒷돈을 챙겨 나올 수 있는 자리인가,아니면 盧씨 개인이 유독 나빠 저지른 개인적 범죄행위인가.
둘째,한국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정치자금(통치자금 포함)의 개념과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정치자금의 납득할만한 용처와 개인적 치부 사이엔 사회통념상의 구별이 있는가.
셋째,이번 사건을 盧씨 개인에 대한 응징으로 끝낼 것인가.벌줄 수 있는 수준과 국민의 분노 사이엔 얼마나 괴리가 있는가.
제도적 개선으로 뒷받침하려면 핵심쟁점은 무엇인가.
이같은 질문은 일본의 각종 부패 스캔들 경험에 비추어 한국과일본의 다른 점이 무엇이며 한국의 대응노력은 어느 단계까지 갈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올해는 일본 의회가생긴지 꼭 100년 되는 해다.그동안 거의 한해도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각종 스캔들이 이어졌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국민적 분노를 산 사람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총리와 가네마루 신(金丸信)전자민당부총재였다.
다나카의 경우 총리재직때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다른 어떤 점보다 규탄의 대상이었다.그가 록히드사로부터 받은 뇌물은 5억엔(약 40억원)이었다.액수로 봐서는 당시로서는 그렇게 컸다고할 수 없다.문제는 한푼이라도 국익을 지켜야 할 총리가 그것도외국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사리(私利)를 위해 나라를 판 것과 다름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가네마루는 정치자금에 대한 일본사회의 통념을 깬 점에서 범죄이전에 치사하다는 비난을 받았다.정치엔 돈이 들게 마련이고 정치인이 음성자금을 모아 자신의 당선과 세력확대를 위해 쓰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일본 국민이 어느정도 눈감아 왔던 대목이었다.정치인은 다소 무리해서 돈을 모으더라도 남을 위해 다 쓴다는 일종의 사회적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전후 일본정계 최대거목으로 꼽히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전총리 같은 사람은 재임중 정치자금을 거뒀지만 거기에 사재를 얹어써 죽고난 후 유족들이 마지막 남은 집까지 팔아야 했다.현역에서 물러나면 인맥과 명예만 가족에게 물려주고 표 표히 보통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본정계의 전통중 하나다.그런데 80세가 넘은 가네마루는 정치자금을 빼돌려 탈세까지 하면서 20억엔어치의 CD를 사두었다가 발각돼 정치생애 전체를 매장시키고 말았다. 어쨌든 일본은 거듭되는 정치부패가 정치시스템에 기인한 바 많다는 점에 공감,올초 정치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핵심은 돈이 많이 드는 중의원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고 정치인이 개별적으로 돈을 끌어들일 수 있는 루트를 많이 차단했 다.
盧씨 사건에서 드러난 최대의 제도적 결함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 사람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점과 단임제의 폐해가의외로 심각하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은 장기독재를 해 불행한 최후를 마 친 대신 개인적 부패 문제는 남기지 않았다.반면 전두환(全斗煥).노태우전대통령은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는 전통엔 일조했지만 퇴임 후 부패로 국민을 좌절시켰다.그렇다고 헌법사항인 대통령의 권한이나 임기를 마음대로 고칠 수도 없고 고쳐봐 야 그것대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그렇다면 단임대통령의 부패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품만 믿을 수도 없고 거듭되는 「한탕」을 눈감아 넘길 수도 없다. 이제 정치권과 국민은 대통령이 그만두고 난 후 국민의 검증을 받을 수 있는 객관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진지하게 나서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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