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샷했을 뿐, 어프로치 남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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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29면

“몇 년만 지켜봐 달라. 코오롱도 좋고, SK도 좋은 윈-윈 게임이 될 거다.”

‘적과의 동침’ 받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

지난달 30일 코오롱과 공동으로 ‘글로엠’이라는 합작회사를 만들기로 합의한 SKC의 최신원(56·사진) 회장은 최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합작사의 미래를 자신했다. 글로엠은 두 회사의 폴리이미드(PI) 필름 사업 부문을 합쳐 설립하는 것이다. PI 필름은 휴대전화·평판디스플레이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재다.

라이벌이었던 두 회사가 손을 잡은 사연은 이렇다. SKC와 코오롱은 2005년께 PI 필름 사업에 각각 뛰어들었다. 그러나 듀폰-도레이, 카네카 등 선발 업체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미미했다. 그러다 보니 SKC는 지난해 이 사업에서 150억원의 적자를 냈다. 코오롱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선발업체와 경쟁하려면 몸집을 키우는 게 불가피했던 것이다. 결국 50%씩 지분을 나눠 갖는 조건으로 SKC의 충북 진천공장과 코오롱의 경북 구미공장 등을 현물 출자하기로 합의했다.

최 회장은 “박장석 사장이 합작사 설립 문제를 보고했을 때 처음에는 (합작사 설립에) 고심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시작한 지 3년도 채 안 된 사업에 대해 너무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는 “기업 생존을 위해선 경영 효율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아버지(고 최종건 SK 창업주)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곤 한단다. 이번 결정을 하는 데도 ‘내가 기업을 하고 있지만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는 부친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SKC의 모태는 1976년 설립된 선경화학이다. 업계에선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일반인에겐 비디오테이프 만드는 회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비디오테이프·플로피디스크·콤팩트디스크(CD) 등을 생산하는 자기테이프 사업부가 회사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했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 이 회사는 자기테이프 사업을 하지 않는다. 2000년 SKC 대표이사를 맡은 최 회장이 과감히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인 공급 과잉이 빚어지면서 개당 30달러 하던 비디오테이프가 25센트까지 떨어져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자기테이프 사업부는 2005년 12월 SKC미디어로 분사했다.

최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SKC에선 SKC미디어 외에도 ‘떼고 붙이는’ 작업이 계속됐다. 우선 2001년 프로필렌옥사이드(PO)를 생산하는 SK에버텍의 합병이 이뤄졌다. 그 이듬해 CD 사업을 접은 대신 2004년엔 디스플레이 소재 사업에 진출하고, 2005년엔 2차 전지 사업부를 SK에너지로 이관했다. 2006년 6월엔 그룹의 SK텔레텍 매각 조치로 연간 3000억~4000억원 매출 규모의 휴대전화 소재 사업을 포기했다.

최 회장은 “새로 할 사업과 접을 사업을 결정하는 것이 늘 과제였다”며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구조조정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사업 포트폴리오를 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임직원과 헤어지는 것이었다”며 “이제는 각 사업 부문이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있어 희망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실제 SKC의 사업구조는 크게 단출해졌다. 한때 6개였던 사업부가 PO를 주로 생산하는 화학사업부와 필름사업부 두 개로 정리됐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매출이 8440억원으로 한창 때(2005년)의 60% 수준으로 줄었다. 물론 SKC하스, 글로엠 등 합작 자회사 매출을 합치면 1조2000억원대로 늘어난다. <그래프 참조>

그러나 최 회장은 “체격이 작아졌지만 체력은 좋아졌다”고 자평했다. 한계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수익성 높은 소재 사업에 진출한 덕분이다. 지난해엔 코스닥 상장회사인 솔믹스를 인수해 태양전지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솔믹스는 태양전지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의 핵심 기술이 되는 잉곳을 생산하는 업체. 최 회장은 “SKC의 필름 기술이 합쳐져 시너지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 분석도 긍정적이다. 황규원 동양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SKC는 불과 7년 사이에 사업구조를 통째로 바꾼 셈”이라며 “터닝포인트를 위한 정지작업이 끝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구조조정 실적이 가시화하는 내년엔 매출 9100억원, 영업이익 780억원이 예상된다”고 제시했다.

최 회장은 “골프로 치자면 이제 티샷을 했을 뿐”이라며 “아무리 티샷이 좋아도 어프로치와 퍼팅이 좋지 않으면 스코어가 잘 나올 수 없는 만큼 이제 어프로치에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프로치 경영’에 대해 묻자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울산과 진천·수원 사업장에 내려간다. (임직원과) 대화하면서 격려도 하지만 어떨 땐 채근도 하다. 이렇게 현장에서 부대끼면서 회사를 그린 위에 올려놓겠다.”



WHO?
1952년 경기도 수원생. 경희대와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SK그룹 창업자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차남으로, 형(윤원)이 2000년 지병으로 사망한 이후 최씨 일가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촌동생이다. SK유통을 거쳐 2000년부터 SKC·SK텔레시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안정적 노사문화 정착에 공을 들여 지난해 노조의 ‘항구적 무분규 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올 3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는데, 이 훈장은 45년 전 부친인 최종건 창업주가 민간인으로는 처음 받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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