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5개국을 돌며 TV쇼를 촬영할 당시의 필자.
이렇게 많은 최초 기록이 따라다니니 인터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도 이와 관련된 것이다.
“유난히도 최초 기록이 많은데, 최초 기록을 즐기시는 거 아닌가요?”
“두 번째는 재미없잖아요? 달나라에도 처음 간 사람만 기억하고,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에서도 처음으로 피니시 라인에 들어온 사람만 기억하듯이 처음이라야 기억도 잘 할 수 있을 테고….”
물론 나는 최초를 좋아한다. 그리고 최고를 지향한다. 하지만, 내가 최초를 좋아하고, 최고를 지향하는 것은 비단 대중들이 나를 기억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지난 50년 동안 나를 쉼 없이 달리게 하고, 더욱더 가혹하게 채찍질한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김혜자는 가수 패티 김을 위해 80% 이상 희생하고 양보해 왔다”는 말은 사실 내 생각이 아니다. 지난 세월 내 남편이나 딸들 다음으로,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들보다 훨씬 더 나를 가까이에서 보고 많은 시간 함께 해준 막내 동생이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혹독하리만큼 절제하고 참으며 가수 패티 김을 관리하면서 살아온 내가 어떤 때는 내 스스로 생각해도 가엽고 안쓰럽고 또 한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자 막내 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언니 안에는 평범한 인간 김혜자와 가수 패티 김이라는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수치로 나눠보자면 김혜자가 2, 패티 김이 8이야. 김혜자는 패티 김에게 항상 80%는 양보하고 살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게 애써온 나를 알고 인정해주는 가족이 있어 기뻤고, 그 힘이 오늘의 나, 패티 김을 있게 했다고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웠다. 앞으로 나에게는 또 얼마만큼의 최초 기록이 허용될까?
99년 데뷔 40주년 기념 대공연을 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내 삶의 목표는 50주년을 무대 위에서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이룬 지금, 나는 또다시 목표를 세우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 역시 최초라는 기록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패티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