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8개월 30대 50시간 만에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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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 피해 구조작업이 본격화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중국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신화통신 등 현지 언론들이 15일 전했다.

13일 오전 8시쯤 쓰촨성 베이촨(北川)현 주택가의 피해현장을 살펴보던 인민해방군 기갑부대원들은 4m 높이의 콘크리트 더미 밑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린 딸을 감싸고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품속의 어린아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러나 워낙 콘크리트 더미가 커 특수 장비 없이는 구조가 어려웠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대원들은 우의로 소녀를 감싸고 계속 말을 하며 소녀가 잠들지 않도록 했다. 다음날 오전 9시 장비를 갖춘 구호대가 도착해 지진 발생 후 40여 시간 만에 아이를 구조했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부르짖으며 엉엉 울었다. 구조대원도 이재민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는 산길을 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학교 건물에 깔린 친구를 천신만고 끝에 구한 중학생의 미담도 전해졌다. 진앙지인 원촨(汶川)현의 한 중학교 3학년생인 마젠(馬健)은 4시간 동안 맨손으로 시멘트 벽 등을 옮기고 긁어내 같은 반 친구 샹샤오롄(向孝廉·여)을 구했다. 샹사오롄은 손발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지만 친구의 부축을 받고 학교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 직후 건물은 완전히 무너졌다. 샹사오롄은 곧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14일 오후 두장옌(都江堰)의 폐허가 된 아파트 단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6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그 잔해 더미에 갇혀 있던 임신 8개월의 장샤오옌(張曉燕·35)과 그녀의 어머니가 50시간 만에 구조됐기 때문이다. 장씨 모녀를 구해낸 산둥(山東) 소방대 대원 50여 명은 하루 2시간씩만 자면서 철야로 구조활동을 편 끝에 이들을 구해냈다.

또 칭촨(靑川)현의 한 무너진 중학교 건물더미 안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허취칭이 매몰 50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신화통신이 15일 보도했다. 특히 구조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을 지켜보던 간호사 왕광펀은 붕괴 위험을 무릅쓰고 허취칭 곁으로 접근한 다음 의약품을 전달해 주위의 탄성을 자아냈다.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서고 있는 군과 경찰은 기적적인 생환자가 잇따라 나올 수 있게 한 일등공신들이다. 14일부터 원촨현에 투입된 공수부대원 4500여 명은 모두 자발적으로 유서를 쓴 후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산세가 험하고 도로가 끊겨 공중으로 투입돼야 하는 데다 여진이 심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장옌에 주둔하는 인민해방군 자오위장(趙玉江) 대대장은 14일 현지에서 구조작업 중 여진으로 부상을 입었다. 구조 중지 명령을 받았지만, 상부에 “저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죽어도 좋으니 제발 저들을 구할 수 있도록 현장으로 보내 달라”며 울부짖어 모든 대대원이 통곡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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