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환율 짓눌려 날개 접는 노선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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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아시아나항공은 제주공항을 출발해 중국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여객기편 예약을 7일 받지 않았다. 주 1회 수요일 왕복 운항하던 제주∼상하이 노선 운영을 무기한 중단한 것이다. 아시아나는 1998년 이 노선을 개통한 이후 고비마다 운항을 일시 중단해 왔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2003년 중국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창궐, 2005년 조종사 노조의 파업 같은 굵직한 난관에 직면할 때였다. 이제 고유가와 환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영향 때문에 올 들어 국내 항공운송업계가 특정 노선 운항을 중단한 건 처음이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항공운송업계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노선을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주 4회 운항해온 부산∼양양 노선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고유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 적자가 심한 노선부터 차근차근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의 비상경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고객 민원 때문에 노선 감축은 마지막 고려 대상”이라던 목소리가 사그라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1분기에 325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에는 1308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회사 측은 “총비용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0%대 초반이었는데 38%까지 커졌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연초 경영계획을 짤 때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올해 연평균 시세를 배럴당 83달러로 추정했다. 하지만 지난주 말 126달러까지 치솟았다. WTI 연평균 시세가 배럴당 85달러가 될 것을 전제해 경영계획을 짠 아시아나도 곤혹스럽다. 강주안 사장은 “배럴당 110달러 이상이 지속되면 비수익 노선 운항을 차례차례 쉴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환율 상승도 큰 복병이다.

대한항공은 올해 연평균 환율을 연초 달러당 920원으로, 아시아나는 910원으로 잡았지만 실제로는 예상치를 크게 웃돈다. 지난주 말 원-달러 환율은 1044원을 넘어섰다. 대한항공은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0원 떨어질 때마다 170억원, 아시아나는 110억원가량의 손실을 본다. 대한항공 측은 “항공기를 리스하거나 항공유를 수입할 때 원화로 달러를 사서 결제하는데 이때 원화 가치 하락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국제선에 적용하는 유류할증료의 단계를 확대해 달라고 국토해양부에 요구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항공료와 별도로 받는 유류할증료는 이미 16단계 중 최고 단계에 달했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항공유 값이 너무 올라 유류할증료가 제 기능을 못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또 국제선에만 있는 항공유 면세 제도를 국내선까지 확대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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