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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48> ‘200승 -5’ 김정남 감독님, 용기를 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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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호 감독의 200승 소식을 들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이를 극복한 것은 대단하다. 200승이 김 감독에게 큰 위로가 돼서 더 좋은 기록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김호 감독의 ‘40년 지기’이자 김 감독과 200승 고지를 향해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김정남(울산 현대) 감독의 말이다. 그는 현재 195승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김호 감독이 많은 축구팬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반면 김정남 감독은 “수비 축구를 한다”는 비판에 업적이 가려져 있다.

“(프로축구 보러) 문수경기장 안 간 지 몇 년 됐심더. 축구가 재밌어야 보러 가지예.”

울산에서 만난 한 축구팬의 얘기다. 조기축구회에서 공을 찬다는 그는 울산이 수비 축구를 하는 바람에 팬들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호 감독이 199승을 달성한 다음 대전-울산의 컵대회가 열린 4월 30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원정 팀인 울산 서포터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10년 동안 프로축구를 취재하면서 이런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전반에 이상호가 선취골을 넣자 울산은 예상대로 ‘잠그기’에 돌입했다. 후반 울산은 공격수 한두 명을 빼고는 하프라인을 넘지 않고 열심히 수비를 했다. 그래서 1-0으로 이겼다.

김 감독은 60∼70년대 국가대표로 명성을 떨친 명 수비수 출신이다. 그는 축구에서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 축구를 구사한다. 문제는 홈이든 원정이든, 상대가 약하든 강하든 선취골을 넣으면 ‘잠그기 모드’로 자동 전환한다는 데 있다.

김 감독은 ‘수비 축구’ 얘기만 나오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는 2005년 울산의 K-리그 우승을 이끌고도 기자들의 투표로 뽑은 ‘올해의 감독상’을 준우승한 장외룡(인천) 감독에게 넘겨줘야 했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K-리그는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공격 축구’ 바람이 불고 있다. 대구 변병주 감독은 ‘무한 공격 축구’로 사랑을 받고 있다. 3일 서울과 3-3, 11일 울산과 2-2로 비긴 전남 박항서 감독은 “먼저 골을 넣고 잠글 수도 있었지만 팬에게 한 골이라도 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이라고 성적에 초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팬을 위한 재미있는 축구가 우선이라는 철칙을 공유하고 있다.

김정남 감독은 명문 울산 구단을 2000년부터 9년째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년짜리 계약을 했다. 성적이 부진하면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자리와 팬의 즐거움을 맞바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 감독이 활기차고 멋지고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200승을 달성한다면 그는 축구팬의 큰 박수를 받고 명장(名將)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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