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무법자 블랙홀도 죽을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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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홀의 중심으로 별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모습의 가상도.미니 블랙홀은 결국 사라지기도 한다.

올 들어 블랙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천체물리학연구소가 블랙홀이 별을 사냥할 때 나오는 빛을 천체망원경으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블랙홀이 활동하는 모습을 제대로 관측한 예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상상 속의 천체''집어삼키기만 하는 곳''시커먼 곳' 등 블랙홀에 대한 오해도 깊다. 이런 오해를 풀어본다.

*** '호킹 이론' 정설로 굳어

동화 속에는 하늘나라 나이와 지구 나이에 큰 차이가 나는 장면이 가끔 나온다. 하늘나라에서 하루를 지내고 왔는데 지구에는 수십년이 흘렀다는 식이다. 그런 동화가 실제로 가능할까.

지구 나이로 수백년을 살고 싶은 사람은 블랙홀 근처로 가면 된다. 블랙홀 근처에서 며칠을 지내다 오면 지구에서는 수백년이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늦게 가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블랙홀과 같이 중력이 엄청나게 큰 곳에 갔다오거나 빛의 속도에 가깝게 사람이 움직이면 된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예측했고 후대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블랙홀 근처와 지구 위에서 시간은 동일하게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실제 아파트 20층에 사는 사람은 1층에 사는 사람에 비해 평생 10만분의 1초 정도 더 수명이 짧다. 1층에서의 중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약간의 중력 차이에도 그렇게 시간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블랙홀의 중력은 지구의 수조배나 된다. 그럴 경우 블랙홀 근처의 시간은 지구에 비해 엄청나게 더디게 갈 것은 당연하다.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박명구 교수는 "중력이 대단히 크면 시간과 공간이 함께 휘어지는데 이는 어떤 거리를 직선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도 역시 곡면을 돌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늦게 흘러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블랙홀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다.

사람이 빨리 움직여도 시간은 늦게 흐른다. 시계 하나는 고정시켜 놓고, 또 하나는 우주선에 싣고 초속 10km로 70년을 달리고 나면 우주선 안의 시계가 1초 늦어진다. 우주선의 속도가 빛의 속도(초속 30만km)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시간은 지구상에 고정돼 있는 시계보다 더 늦게 간다.

일반인들이 가지는 블랙홀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블랙홀이 집어삼키기만 하고, 검다는 것이다. 블랙홀이 빛도 빠져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만 하는 암흑의 천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다. 현재까지 우주에서 관측된 블랙홀은 집어삼키기만 한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론적 발견에 따르면 아주 작은 크기의 미니 블랙홀은 주변 물질들을 빨아들일 수도 있지만 빛과 광자(X선.감마선 등)들을 내뿜기도 한다. 즉,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 X선 등 내뿜으면 홀쭉해져

그렇게 되면 뚱뚱했던 불랙홀은 소모한 에너지만큼 훌쭉해지며, 마침내 증발하기도 한다. 미니 블랙홀이 에너지를 내뿜을 때는 검은색이 아닌 흰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니 블랙홀이 소멸되면 그 자리에는 빛만 남게 된다.

호킹 박사가 블랙홀의 증발 이론을 내놓기 전까지는 블랙홀이 주변의 물질을 삼켜 마냥 커지기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 때문에 '소멸되지 않고 잡아먹기만 하는 무시무시한 천체'로 블랙홀이 인식됐던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미니 블랙홀이 감마선 빛을 내뿜으며 증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관측에 나서고 있다.

블랙홀은 주변의 것을 모두 빨아들이기 때문에 우주의 무법자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블랙홀도 적당한 거리로만 떨어져 있으면 안전하다.

*** 증발된 자리엔 빛만 남아

박교수는 "태양이 갑자기 블랙홀로 된다고 해도 그 주변의 수성이나 금성.지구 등 태양계 행성은 빨려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랙홀 역시 블랙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궤도를 도는 천체에는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은하 내에서 관측된 블랙홀은 10여개에 불과하지만 1000억개에 이르는 모든 은하의 중심에도 블랙홀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 기자

◇블랙홀이란=표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중력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빛까지도 못 빠져 나오는 천체. 1969년 미국의 물리학자 휠러가 이름을 붙였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휘어져 시간이 지구보다 늦게 흐른다. 블랙홀은 직접 관측하기 어렵고, 주변의 별이 빨려들어갈 때 생기는 회전가스 원반 형태의 X선이나 감마선 빛을 관측해 알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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