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만화] 프랑스 애니 '판타스틱 플래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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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별나라를 지배하는 거대 종족 트라그에 비해 인간은 왜소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로 등장한다. 인간을 보는 이런 색다른 시선은 관객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일본의 다카하다 이사오(69)감독은 전세계에서 경탄해 마지않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뜻밖에도 비판적인 지적을 내놓았다. "주인공의 시점 위주로만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에 관객이 다른 입장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게 요지였다. 오랜 동료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끌어온 이 노장 감독은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 애니메이션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일본과 달리 서양 애니메이션은 객관적인 묘사가 특징"이라면서 '키리쿠와 마녀'같은 프랑스 작품에 감동받았다고 밝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관적 묘사에 한계를 느낀 이 노장 감독을 매료시킨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확인하고 싶다면, 다음달 9일 개봉하는 '판타스틱 플래닛'을 권한다. 1973년 칸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이 본상(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무려 30년이나 지각 개봉하는 셈이지만, 인간 세상 바깥의 존재를 통해 우리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세월을 뛰어넘어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판타스틱 플래닛'의 무대는 푸른 피부의 거대한 종족'트라그'가 지배하는 이상한 별나라다. 벌거벗은 엄마와 아기가 트라그의 커다란 푸른 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첫 장면에서 보듯 이 곳에서 인간의 존재는 마치 거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왜소하기 짝이 없다. 트라그들이 '옴'(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homme'을 발음 그대로 옮겼다)이라 부르는 인간은 지능이 거의 없는 야생동물로 취급되고, 어린 옴들만이 애완동물로 길러진다.

주인공인 옴 소년'테어'역시 엄마를 잃은 뒤 트라그 소녀 '티바'의 놀잇감이 된 신세다. 그나마 티바는 테어를 친구처럼 소중히 여겨, 뇌와 직접 연결되는 헤드폰을 끼고 공부를 하는 사이에도 테어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덕분에 각종 지식을 습득한 테어는 헤드폰을 훔쳐 탈출에 성공하고, 주술사를 신봉하던 야생의 옴들에게 문명을 전파하게 된다. 이후 벌어지는 옴과 트라그의 대결은 서로의 문화에 대해 무지한 인간들이 역사 속에서 자행해 온 다양한 갈등과 다툼에 대한 우화로도 읽힌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인간에 대한 이같은 상대주의적인 관점뿐 아니라 우주와 미래에 대한 상상력 역시 독특하다. 고도의 문명을 구축한 트라그의 성인들은 명상을 통해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것이 주된 일과이고, 문명세계 바깥의 자연은 기괴한 동식물로 가득하다.

감독 르네 랄루(75)는 25명의 애니메이터들과 종이 위에 한장씩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3년 반이 걸려 이 작품을 완성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뒤늦게 이 작품을 발견해 구입한 수입사(백두대간)는 랄루 감독의 82년작 '타임 마스터'도 곧 개봉할 계획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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