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서 한우·수입소 섞어 ‘한우 모둠’으로 팔기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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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08면

지난해 7월 신세계 이마트의 미국산 쇠고기 판매 코너에 몰린 사람들. 미국산 쇠고기는 지난해 10월 국내 수입이 중단됐으나 곧 수입이 재개될 예정이다. 중앙포토

중소형 음식점 원산지 표시 안해

美 쇠고기 논란 계기로 유통 실태 알아보니

“100% 한우만 판다고 선전하는 식당이 많다. 하지만 이런 식당 중 일부는 양념 갈비에 수입산을 섞곤 한다. 갈비뼈에 붙어 있는 고기는 한우지만 거기에 이어 붙이는 덧살은 수입산을 쓰는 것이다. 한 식당에서 파는 ‘한우 모둠 고기’의 실상은 ‘한우+수입산 모둠 고기’였다. 등심이나 특수 부위 등 비싼 부위는 수입산을, 싼 부위는 한우를 내놓는 것이다.” 한우협회 유호준 대리가 들려준 경험 사례들이다. 유 대리는 “전문가조차 육안으로는 한우와 수입산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며 “특히 양념한 고기는 식별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속이거나 아예 표시하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쇠고기 원산지 표시 단속을 하는 민간단체인 ‘한우사랑 유통감시단’이 올해 1~4월 수도권 지역의 2000여 개 식당을 조사해 잠정 집계한 결과 대형 음식점(연면적 300㎡ 이상)은 5곳 중 1곳, 중소형 음식점(100~300㎡)은 5곳 중 4곳꼴로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우영기 감시단장은 “원산지 표시 위반을 지적하면 ‘장사도 안되는데 웬 시비냐’며 멱살잡이를 하는 식당도 있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원산지 둔갑’은 범죄

이같이 식당의 쇠고기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과 관련, 위반업소의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식당 문을 닫으면 생계가 막연하다’는 자영업자의 호소에 단속기관들은 처벌을 강하게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원산지 표시 위반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처벌 수위를 낮추는 배경이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쇠고기 원산지 위반 여부를 조사한 식당은 1672개소. 이 가운데 17%인 285곳이 원산지를 허위 표시하거나 표시하지 않아 적발됐다.

하지만 적발 업소 중 7일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곳은 46개에 그쳤고, 나머지는 100만~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그나마 이는 지자체가 실시하는 원산지 단속보다 훨씬 나은 결과다. 지난해 상반기 전국 260여 개 시·군·구가 실시한 5921건의 원산지 위반 조사에서 적발 건수는 176건(2.9%)에 불과했다.

지역 주민의 표를 먹고사는 지자체장으로서는 식당 주인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적발 실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한우협회 장기선 부장은 “단속 인력을 늘리거나 단속 대상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실효성을 높이려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속 강화하겠다지만…

국내 쇠고기 원산지 표시 단속은 아직 초보 단계다. 지난해 처음으로 면적 300㎡ 이상인 대형 음식점 4200여 곳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다음달 22일엔 단속 대상이 면적 100㎡ 이상의 중소형 음식점 11만7000여 곳으로 늘어나고, 단속 품목도 구이용뿐 아니라 찜·탕·육회용 등으로 확대된다.

지난해 국회에서 결정한 데 따른 조치다. 정부는 광우병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쇠고기 원산지 표시 단속 대상을 술과 음식을 함께 파는 일반음식점 57만여 곳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식의약청과 지자체가 전담해온 식당 원산지 표시 단속 권한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도 부여하고, 농산물품질관리원의 특별사법경찰을 4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단속 인력 충원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단속 기준 마련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 대상에서 아예 빠진 술을 팔지 않는 휴게음식점 중에서도 쇠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취급하는 곳이 많아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단속 대상 음식을 어떻게 정할지, 단속 대상 식당에 휴게음식점까지 포함시킬지를 놓고 음식업중앙회 등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육점에서 속을 수도

쇠고기 원산지 표시는 식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매업자가 식당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도매업자가 서류를 위조한 뒤 위조 서류 복사본을 식당에 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식당은 본의 아니게 소비자를 속이는 꼴이 된다.

정육점 등 쇠고기 판매점에서 수입산을 국산으로 원산지를 둔갑시키는 행위가 이뤄지기도 한다. 우영기 감시단장은 “식당은 쇠고기 도매상으로부터 원산지 종류를 기재한 영수증이나 거래내역서를 받아 1년 이상 갖고 있어야 하지만 원산지를 속이는 식당에선 이런 서류를 없애버리거나 가짜 서류를 비치한다”고 전했다.

조성환 농산물품질관리원 기동단속반장은 “수입산 쇠고기는 냉동창고에서 장기간 보관되기 때문에 색깔이 한우에 비해 검붉고, 얼었다가 녹으면서 근육 속의 피가 떡심 등 지방층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 제보가 원산지 단속의 가장 중요한 정보”라며 “원산지 위반이 의심되는 식당이나 정육점은 전화(1588-8112)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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