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된 민주당에 호소합니다 18대선 단상 점거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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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9일 국회 본회의 장에서 30년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며 고별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10년 만에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에 간곡한 호소를 드립니다. 18대 국회에서는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물리적 힘으로 단상을 점거하고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태를 청산하겠다는 선언을 해 주십시오.”

6선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30년 정치 역정을 마무리하는 ‘은퇴식’을 9일 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개인 신상발언의 형식을 빌려 후배 의원들에게 고별사를 남겼다.

김 전 의장은 먼저 “17대 국회는 과거 대통령 권력이 주도했던 입법을 국회로 가져와 처음으로 입법부의 위상을 확보했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선거가 깨끗하고 투명해지는 혁명적 변화를 이룩했다”고 자평했다.

김 전 의장은 그럼에도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며 “지난 총선 때 여야가 외부 인사에게 공천을 맡긴 것은 극단적 정치 불신을 완화해 보려는 몸부림이었겠지만, 두 번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될 부끄러운 행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야에 각각 당부의 말을 했다.

먼저 자신이 속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마치 경제 위기 때 노조가 무파업 선언을 하는 것처럼 여당과 몸싸움을 벌이는 일은 끝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최후의 투쟁 수단을 포기하면 정권의 독선·독주를 어떻게 막겠느냐는 염려가 있겠지만 약한 야당을 각오하고 그런 결단을 할 때, 국민이 여러분을 강한 야당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나라당 의석을 향해 “절대 다수의 집권 기반을 갖게 된 여러분이 민주주의의 본질인 소수자·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실천할 때 한나라당은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 여야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떠나는 원로 정치인을 예우했다.

김 전 의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1979년 10대 총선 때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신민당 후보로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오랫동안 야당 생활을 하면서 주요 당직을 맡았으나 동교동계와는 거리를 두고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즉답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둘려’(‘기다려 보라’의 호남 사투리)라고 해 아예 ‘지둘려’가 별명이 됐을 정도로 느긋하고 원만한 스타일이다.

DJ가 95년 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그는 민주당 잔류를 선택하고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DJ와 결별한 탓에 96년 15대 총선 때 낙선했다. 97년 대선 때 다시 DJ 진영에 합류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권력 핵심에 진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통추 때부터 인연을 맺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그는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로 화려하게 발돋움했다. 17대 국회 전반기에 국회의장을 맡았으며 올 초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글=김정하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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