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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n 나눈다고 균형발전 되나 … 돈·권한, 지방 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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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에 제2, 제3의 강남을
좌승희 원장 발제문

수도권은 현재 인구로는 전국의 49%,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47.7%를 차지한다. 이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수도권의 1인당 GRDP와 노동생산성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쟁력과 삶의 질도 세계 78개 광역 도시권 중 고작 68위다.

지난 정부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밀어붙였지만 이는 정치적 명분만 그럴듯할 뿐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국가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도 약화시켰다.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혁신도시 사업의 경우, 토지보상비 외에 건설사업비 등 43조원을 쏟아 붇는 데도 연간 경제이득은 3000억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혁신도시는 기존 시가지의 침체를 가져온다. 이는 서울의 ‘강남 개발과 강북 낙후’처럼 또 다른 새로운 불균형 문제를 낳는다.

정부는 정책 방향을 수도권 집중 억제에서 수도권 집적 활용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으로 지식의 창출·전파·상업화를 촉진해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 수도권은 연구개발비의 63.4%, 연구인력의 60.5%, 특허등록 수의 77.8%, 창업의 61.6%를 담당하고 있다. 이를 국가 경제성장 동력으로 활용해 수도권을 기술혁신 중심지로 개발해야 한다.

또 제2, 제3의 강남을 영·호남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특성도시·기업도시·혁신클러스터·공공기관 이전 같은 ‘분산과 해체’ 전략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력을 지역의 한곳으로 집중하고 그 성장의 과실을 이웃 도시들이 나누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7일 본지가 주최한 첫 ‘신국토포럼’에 각 지방자치단체 발전연구원장들과 학자·전문가 등 17명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중앙일보 대회의실에서 네 시간가량 마라톤 토론을 벌였다. 사진 왼쪽부터 이계식 부산발전연구원장·육동일 대전발전연구원장·온영태 국토연구원 건축도시공간연구소장·김정호 강원발전연구원장·김경환 서강대 경제학 교수·권용우 성신여대 지리학 교수·김병준 국민대 행정학 교수·곽재원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겸 통일연구소장·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허향진 제주발전연구원장·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진영환 국토연구원 도시혁신지원센터소장·정희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광역경제권연구단장·이수희 충북개발연구원장·서승환 연세대 경제학 교수. [사진=강정현 기자]


▶사회(곽재원)=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불균형을 통한 균형, 수도권이나 혁신 거점의 육성을 통한 기타 지역의 발전전략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부터 토론하자.

▶김병준=이웃이 잘살아야 나도 잘살 수 있다지만 수도권부터 먼저 이 생각을 해야 한다. 호남과 영남 등이 잘살아야 수도권도 발전할 수 있다고 말이다. 수도권은 지방이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김정호=균형발전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수도권 집중만 심화됐다. 수도권은 인적·물적 자원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타 지역에 주는 게 없다. 지방은 정말 심각하다. 대체 얼마나 더 커져야 줄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좌승희=가장 먼저 성장한 곳에서 자금 수요가 가장 많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들이 공평하게 해야 한다면서 자금을 가져가버리면 이 지역은 자금 수요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부산을 예로 들면 김해공항에 내려 해운대를 갈 때 요금을 네 번 낸다. 도로가 민자로 건설됐기 때문이다. 자금 수요를 공공자금으로 못 대니 민자가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육동일=지방이 원하는 건 결과의 균형이 아니라 기회의 균형이다. 지방은 그동안 공정한 발전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지난 정부의 국정 운영에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균형발전이란 목표를 부정해선 안 된다.

▶김경환= 수도권 규제는 완화돼야 한다. 수도권의 경쟁 대상은 지방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여타 지역의 대도시권이다. 또 수도권을 규제해서 지방을 육성하는 방식은 효과가 작고 부작용이 크다.

▶김정호=그렇지 않다. 인구가 800만 명을 넘어서면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기 어렵다. 서울이 세계의 다른 도시와 경쟁하려면 인구를 줄여야 한다.

▶홍철=나라 전체의 성장잠재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투자가 많아야 하는데, 현재 대규모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할 수 있는 곳은 수도권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 공감한다. 하지만 수도권도 국가의 일부다. 지방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진영환=수도권 규제 완화와 지방의 발전 문제는 따로 떼내 생각하기 어렵다. 지난 정부에서 경기도 파주의 LCD단지가 수도권 규제 문제와 연계돼 불거졌을 때 당혹스러웠다. 파주를 과연 수도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파주가 안 됐더라면 공장은 구미로 갔을 게다. 그렇다면 이 경우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할까. 이 문제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것 같다.

▶이계식=동감이다. 중앙과 지방은 생각하는 게 다르다.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옳을 수도 없다. 그러니 지방과 중앙 간 논쟁은 감정적으로 되는데, 그러면 대화가 안 된다.

▶서승환=평등의 문제는 수도권과 지방 간 문제만이 아니다. 어느 지역이든 다시 작게 나눠보면 그 안에 다시 중앙과 지방의 문제가 나온다.

▶온영태=격차 문제보다는 1극 중심구조가 더 나쁘다. 독자적 성장이 가능한 지방을 육성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n분의 1씩 나눠 가지는 건 곤란하다.

▶좌승희=수도권의 흡입력을 막아낼 거점이 어딘지 고민해야 한다. 서울의 흡입력이 문제라면, 서울에 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가끔 울산에 내려가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울산을 거점으로 만들려면 다른 몇 군데를 포기해야 한다. 전략 거점 지역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수희=다극화 체제를 막는 무엇인가가 있다. 한국은행 산업연관표를 보면 수도권은 가장 완전한 자립공동체다. 수도권에서는 자기들끼리만 거래한다. 그래서 수도권은 자꾸 성장하지만 그 외 지역은 계속 뒤처지게 된다.

▶권용우=지역 간 균형발전에서 권역별 특화발전으로의 변화가 세계적 추세다. 한정된 자원을 골고루 나눠주는 지역 간 영합(零合·제로섬) 논리보다는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외국 지역과의 경쟁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는 얘기다. 광역경제권 안에서 새로운 도시와 기존 도시가 경쟁을 통해 연계도시를 형성해서 발전의 동력을 형성해야 한다.

▶김경환=지역 발전 정책이 더 중요하다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하면 수도권 규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를 타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수도권도 자기 지역이 잘사는 방식을 추가하는 대신, 지역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자기 것을 내놓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희윤=노무현 정부는 균형발전을 목표로 정책실험을 했지만 분권과 분업은 제대로 안 됐다. 중앙정부 주도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 중앙에서 사업 하나 더 따오는 사람이 유능한 지자체장이 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배분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진영환=그렇다. 중앙정부 중심으로 분산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지방자치단체는 소극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분권을 위해 지방끼리 수평적 재정 조정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지방교부세와 균형발전특별회계 등은 정부가 돈을 지방에 내려 보내는 수직적 구조다. 지방끼리 직접 조정하는 제도를 만드는 걸 사회적 논의에 부쳐보면 좋겠다.

▶최막중=분권이 비수도권을 살리는 방법의 열쇠고리가 될 수 있다. 분권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면 포괄 보조금 제도를 도입하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프로젝트 단위별로 각 부처가 보조금을 준다. 앞으로는 지방의 종합적 발전전략을 평가해 포괄적으로 보조금을 주면 지방 분권은 진전될 것이다.

▶허향진=제주도는 정부가 관광법의 권한을 이양해 특별자치법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가장 핵심인 내국인 카지노 출입 문제가 유보됐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에 대폭 위임돼야 한다.

▶김병준=분권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분권을 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재정적 접근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이수희=그렇지 않다. 재정을 건드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노 정권이 못한 게 바로 분권 문제다.

▶홍철=이 정부가 혁신도시 문제를 제기했는데, 바람직하지 못하다. 중앙정부가 지적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온다는 건 지방에 현금이 들어온다는 의미다. 이걸 이번 정부에서 걷어간다고 하니 지방은 ‘수도권 정부냐’며 발칵 뒤집어졌다.

▶서승환=혁신도시가 지방에 현찰을 주는 것이라는 지적은 맞다. 그러니 문제다. 혁신도시와 행정도시는 공간정책과 소득재분배 정책이 혼재돼 있다. 그러나 공간정책을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혁신도시를 만들면 모든 게 잘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건 미신이다. 미신으로 정책을 만들어선 안 된다.

▶진영환=혁신도시 정착에 대해 우려가 많지만 약속을 한 이상 민영화 대상이 아닌 공공기관은 가는 게 맞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지방정부의 노력이다. 이전 기관을 모태로 산학연 연계를 통해 지방경제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

▶사회=장시간 열띤 토론에 감사드린다. 앞으로는 어젠다별로 보다 심층적인 논의를 하겠다.


정리=최현철 기자·김희영 연구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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