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국민소득 알고보니 '12646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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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이 '채점 기준'이 확 바뀌는 바람에 크게 높아졌다.

한국은행이 23일 새 기준을 적용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6052억달러(721.3조원)였다. 경제성장률은 3.1%(잠정치)로 부진했지만 지난해 말 예상치(2.9%)보다는 높았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000달러를 웃돌아 1년새 2500달러 가까이 급증했다.

한은의 조성종 경제통계국장은 "시대 변화에 맞춰 기준을 현실에 맞게 바꾼 것이지만 과도기적으로 국민소득 관련 수치들이 실상보다 낫게 나오는 데 따른 착시(錯視)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이 정말 늘었나=실제로 소득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다. 실은 바뀐 국민소득을 재는 잣대가 바뀐 덕을 많이 봤다. 우선 1995년 이전엔 생산이나 소득에 잡히지 않았던 항목들이 이번에 대거 포함됐다. 정보기술(IT) 산업이나 사교육비.사회간접시설.군사시설 등이 국민소득 통계에 새로 반영됐다. 여기에 통계 기준연도도 95년에서 2000년으로 바꾸면서 95년 이후 통계를 새 기준으로 몽땅 고쳤다.

그 결과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2646달러(1507만원)에 달했다. 같은 기준으로 다시 계산한 전년 수치(1만1493달러)보다는 10% 늘었지만 종전 수치(1만13달러)보다는 무려 26%나 늘어났다. GNI는 우리 국민이 국내외에서 번 소득을 합친 것이다.

◇왜 기준을 바꿨나=갑자기 바꾼 게 아니다. 이번에 적용한 기준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5개 국제기구가 일찍이 93년에 권고한 것이다.

10여년 전에 나온 잣대를 하필이면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적용하느냐는 의문도 있다. 한은의 안용성 국민소득팀장은 "국민소득이 갑자기 늘어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작업"이라고 밝혔다.

◇빛바랜 최고기록=새 기준이 어쨌든 간에 지난해 국민소득은 96년(1만2197달러)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7년 만에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셈이다. 이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마저 빛이 바랬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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