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오차오에 중국 개방 희망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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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은 당시 살던 이들의 자의식, 사회의식, 미학을 완벽하게 탑재하고 있다.” 아이웨이웨이는 전시실에 중국 골동품 의자(1644∼1911) 100개를 늘어놓고 이렇게 말했다. [사진=김성룡 기자]

“냐오차오(鳥巢·새둥지)가 구현하려는 것은 균등함, 고름, 자유 이념과 민주 정신이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51)가 한국에 왔다.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서다. 그는 ‘냐오차오’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다. 중국 정부는 스위스 건축회사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에 설계를 맡겼고, 이 회사는 아이웨이웨이를 특별 고문으로 초청했다. 아이웨이웨이는 지난해말 세계적 미술전문지 아트리뷰 선정 ‘세계 미술계의 영향력있는 인사 100인’ 중 68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시아에선 가장 높은 순위로 중국 작가 중엔 장샤오강이 86위에 포함됐다.

5일 오전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만난 그는 “대도시의 커다란 건축물은 시대의 야심, 희망 뿐 아니라 시대가 지향하는 맹목성까지 나타내는 하나의 성과물”이라며 “그리 개방적이지 못한 중국이 열리고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둥지 모양은 ‘구조 자체가 전부’라는 걸 보여주고자 한 디자인”이라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건축과 출신도 아닌 데다가 경기장이란 곳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는 그가 주경기장 설계의 주역이라는 점. 이에 대해 그는 “아이를 안 낳아도 부모는 될 수 있는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최근 서울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성화봉송 시위에 대해 그는 “부끄러운 국가주의적 관점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국의 애국주의자들은 왜 성화가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을 지닌 세계 각국을 지나오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왜 북한 한 곳에서만 아무런 목소리 없이 성화봉송이 진행됐는지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올림픽을 연다는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의지와 결실을 세계에 알릴 기회인데, 성화라는 불 자체만 보호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우스운 일”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그는 시인 아이칭(艾靑, 1910~96)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반당분자로 비판받으면서 한 살 때 베이징에서 신장으로 쫓겨갔다. 가족은 17년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아이웨이웨이가 18세가 돼서야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또래들 사이에서 겉도는 아들을 못마땅해 한 아버지를 피해 집 근처 공원서 끄적이던 게 그림 그리기의 시작이었다. 78년 베이징 영화학교에 입학했고, 81년 뉴욕으로 유학갔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수학하고 94년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번 전시에 천안문 앞에서, 백악관 앞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인 사진 시리즈 ‘원근법 연구’(1995∼2003)도 내놨다. 권위에 도전하는 건 그의 숙명이다.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이 왜 이렇게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나. 나는 사회 구성원들이 진실된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며 거침없이 쓴소리를 한다.

지난해 독일 카셀 도큐멘타는 아이웨이웨이의 개인전을 방불케 했다. 그는 중국 청대 고택에서 나온 문짝을 모아 12미터 높이의 대형 구조물을 세웠다. 전시 기간 중 이 작품이 폭우로 부서지자 작가는 “과거 무너진 왕조의 영화를 재건해 놓았더니 또 무너졌다”며 놔뒀다. 또한 1001개의 청대 옛 의자를 전시장 곳곳에 늘어 놓고, 외국 여행 경험이 없는 1001명의 중국인들을 초청해 한 달간 작은 시골마을 카셀 곳곳을 여행다니게 한 ‘동화(fairytale)’도 화제를 모았다. 그때의 의자 중 100개와 그들이 끌고 다녔던 여행가방 100개도 이번 한국전에 나온다. 또한 주경기장이 뼈대만 만들어져 있던 2006년 6월 3일 하루종일 매 시간을 냉정하게 기록한 사진 24장도 걸렸다.

작가는 한창 개발중인 중국 곳곳에서 지나간 유물들이 함부로 버려지는 것을 마음 아파한다. 그래서 수천년 된 토기, 오래된 집과 절에서 나온 나무를 작품의 재료로 즐겨 쓴다. 그는 또한 베이징에서 아내와 50여마리 개와 고양이를 돌보며 산다. 곳곳이 공사중인 베이징에서, 이 집을 철거하고 저 집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버린 애완동물은 아이웨이웨이의 집에서 저마다 새 이름을 얻고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생명이니까, 버릴 수 없쟎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키 175㎝, 몸무게 105㎏ 거구를 끌고 전방위로 활동하는 그다. “건축 설계, 출판, 개인전 기획, 블로그 운영, 예술 등등을 하며 하루종일을 지낸다”는 그에게 정체를 묻자 “나는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전시는 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다. 02-734-6111.

글=권근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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