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유쾌한 지방의 변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벌교꼬막 주식회사’. 이름부터 신선하다. 찬거리인 꼬막을 어민들이 주주인 주식회사를 통해 생산하고 판매하겠다니. 전남도가 보성군 벌교에서 캐는 꼬막을 대표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벌교꼬막 주식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벌교 갯벌에서 나오는 꼬막은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전국 꼬막 생산량 5000여t 중 60~70%가 그곳에서 나온다. 하지만 어민들이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세척·포장 자동화 시설이 없어 손은 많이 가지만 크기나 품질별로 등급화를 못해 제 값을 못 받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어민들이 출자한 주식회사를 세워 생산·가공·유통 과정을 기업화하고 상품성을 높여 어민들에게 수익을 듬뿍 얹어주자는 발상이었다. 전남도는 지난달 29일 첫 창업스쿨 설명회를 열었다. 29개 어촌계 중 24곳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전남도 김갑섭 해양수산국장은 “향토 주민이 주주인 주식회사가 생기는 것은 전국 처음으로 상반기 중 출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얘기. 이효리와 머드팩이 맞짱을 뜬다고 한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리? 사연은 ‘소주병’에 있었다. ‘처음처럼’에는 광고모델인 이효리의 사진과 함께 “흔들어라”라는 문구가, ‘참이슬’에는 ‘주도(酒道)’나 ‘주주들의 지분 현황’을 안내하는 광고 등이 붙어 있다. 그런데 충남 보령시가 5월 한 달간 출시되는 참이슬 1억병의 기존 광고 자리에 ‘보령머드축제’ 광고를 붙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효리와 머드축제가 한판 붙는다는 것이다. 새 제품이 출시되면 지역별로 2~3주 안에 전국 술집에 깔린다니 효과가 제법일 것 같다. 보령시는 광고비를 내지 않는 대신 진로 측에 축제 후원사 명칭 사용권을 줬다. 보령시 관광과 이원구 주사는 “머드축제가 창출하는 지역경제 효과만 530억원을 넘어 재정자립도가 23%에 불과한 시와 주민들의 효자 상품”이라고 했다. 보령머드축제는 7월 12~20일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다.

전남도와 보령시 얘기를 들으니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지역엔 큰 힘이 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의 자치단체는 246곳(광역시·도 16곳+시·군·구 230곳)이다. 공무원 수도 28만2400명이 넘는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1995년 이후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문제는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이 돈·사람·기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지방을 죽인다는 아우성도 끊이지 않고 있다. 3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첫 만남을 가진 16명의 시·도지사도 대부분 “곳간이 비었으니 지원해 달라” “규제 때문에 일 못하겠다” 같은 하소연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방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지방이 노력하면 철저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지원은 하되 차별화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고 적절히 당근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치단체들도 “지방을 살려내라”고만 할 게 아니라 노력하고 변신해야 한다. 모두가 경쟁하며 사느라 죽을 맛인데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내가 해봤자’라는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단체장과 공무원이 한둘이겠는가.

다행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늑장행정을 깨는 초스피드로 대학 캠퍼스와 기업체를 유치한 파주시와 동해시, 3월부터 24시간 민원센터를 운영해 주민을 감동시키고 있는 안산시, 나비·곤충 엑스포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함평군. 무엇이 지역의 강점이고 약점인지, 뭘 해야 먹고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주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한 곳들이다.

전국 246명의 자치단체장은 주민이 낸 세금의 절반을 주무른다. 허투루 일해서는 안 된다. 주민을 감동시킬 작은 일부터 해보라. 유쾌한 지방의 변신은 국가경쟁력의 디딤돌이 된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벌교꼬막 주식회사나 소주병의 보령머드축제처럼.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