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문명 충돌’이란 무엇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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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38면

무‘문명 충돌’에 대해 못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개진한 이 개념은 보편화됐다. 1950년대 프랑스 경제학자인 알프레드 소비가 고안한 ‘제3세계’라는 개념도 ‘문명 충돌’ 못지않은 성공작이었다. 이 표현들이 널리 회자되는 한 가지 이유는 개념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문명 충돌은 ‘서구권(the West)’과 ‘세계의 나머지(the rest)’ 간의 충돌이다.

서구권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서구화(Westernization)는 또 무엇인가. 일본이 서구권 국가로 인정되는 반면 중국이 배제되는 이유는 뭘까. 러시아는 서구권에 속할까.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서구권이 지리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서구권이라는 의식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마도 2500년 전 그리스인들이 동쪽에 있는 페르시아인들과 싸우면서부터다. 그 이후 서구권은 지역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에 바탕을 둔 개념이 됐다.

‘서구적’ ‘서구화’ 등의 용어는 특정 대륙·국가 혹은 특정 종교와 일치하지 않는다. 헌팅턴 교수의 잘못은 서구권을 지리·영토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서구권을 지도로 형상화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일본 등 일부 아시아 나라는 서구화됐다. 비(非)서구적인 이슬람 신자들이 유럽의 서구권 국가에서 살고 있다. 부분적으로 서구화된 비서구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러시아처럼 서구 국가이면서 서구화가 불완전한 나라도 있다. 결국 서구권의 테두리는 영토가 아니라 정신으로 정의하는 게 더 쉽다.

서구권은 세 가지의 근본적인 특질로 구성된 사고방식이라고 나는 믿는다. 비서구권 문명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 이 특질들은 혁신·자기비판·양성평등(兩性平等)이다.
“뭐 새로운 거 없나(What is new?)”라는 말은 헬레니즘 시대부터 인사할 때 쓰는 말이다. 이 인사말에서 우리는 서구적 사고의 핵심을 발견한다. 비서구인은 혁신보다 전통을 우선시한다. 혁신을 근본적 가치로 삼기 때문에 서구권은 과학 분야에서 약진할 수 있었다. 또한 혁신 때문에 서구권과 비서구권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또 혁신이라는 가치 때문에 ‘서구권의 서구화’가 계속된다.

서구권은 스스로 자신의 전통을 계속 파괴한다. 경제학자인 조셉 슘페터는 이를 ‘창조적 파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서구권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은 서구의 자유주의자 못지않게 창조적 파괴를 실행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 영국 총리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영국 왕실의 수많은 유구한 전통을 발견한 사람이다.

자기비판도 중요한 특징이다. 비서구 문명은 긍지와 자기애 때문에 자기비판을 배제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비판하는 무슬림 혹은 중국인 학자는 진정한 무슬림 혹은 중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서구권의 학자는 서구적 가치의 사망을 선고해도 정당성을 충분히 인정받는다.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이가 중국인이나 무슬림 중에는 없다. 16세기 프랑스에서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인디언 야만인도 우리보다 현명할지 모른다”라고 말한 중국인이나 무슬림이 있는가?

물론 중국과 이슬람권에도 몽테뉴나 니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문명의 횃불이 되지 못했다. 자기비판과 문화적 상대주의는 서구적 사고방식의 뼈와 살이다.양성평등도 서구권의 핵심적 가치다. 서구권에서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와 유대교, 그리스도교는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양성평등 주장은 서구권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지금은 양성평등이 당연시된다. 양성평등은 서구화가 아니라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성의 지위 문제는 비서구권의 무슬림과 서구권을 대조적으로 만드는 문제다.

서구권을 하나의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했을 때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비서구권은 서구화되지 않고 근대화될 수 있을까. 서구권과 비서구권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가. 서구권은 계속 서구적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서구화 없는 근대화는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아시아적 가치’ 논란도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근대화될 수 있었던 것은 혁신과 자기비판을 사고방식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화에 성공한 아시아 국가들이 덜 아시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온전한 한국인이며 일본인이다. 그들이 자신의 조상보다 서구인들과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이집트인과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은 고대 아랍인보다 현대 프랑스인이나 미국인에 더 가깝다.

서구화 때문에 현대 이집트인이나 사우디인들이 덜 훌륭한 아랍인이 되는 것일까. 이러한 논란은 현재 모든 비서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참다운 문명 충돌은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모든 사회는 서구화 주장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고 있다. ‘근대화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문명 내 충돌’이 헌팅턴이 말하는 지리적 실체 간의 충돌보다 훨씬 의미 있다.

근대화의 본질적 의미를 둘러싼 싸움은 ‘정체성 위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위기는 비서구뿐 아니라 서구권 국가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구권과 비서구권의 원리주의자들이 서구화 전쟁을 전통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서구화라는 역사의 엔진을 끄고 싶어한다. 어떤 이들은 서구화 대신 ‘환경’이나 정체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뭐 좀 새로운 거 없나”라는 인사와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 서구 사회는 더 이상 서구 사회가 아니다.

Project Syndicate/Institute for Human Science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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