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제 살리기 마잉주의 실용노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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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34면

대만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다.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하는 ‘중소기업 대국’이고 전 세계 주요 정보기술(IT) 제품의 80% 이상을 생산하는 IT 강국이다. 2006년 기준으로 전 세계 컴퓨터 마더보드(주기판)의 99%, 노트북 PC의 87%, LCD모니터의 75%를 대만 기업이 생산한다. 미국 기업들이 대만 기업을 대신할 IT 공급원을 찾는 것은 중동을 제외한 산유국을 찾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대만 경제는 2007년 5.7% 성장했고 실업률도 3.9%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IT 이외의 거의 전 부문은 비틀거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제조업 일자리가 중국으로 이동하고, 외국 자본과 다국적기업들은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대만에서 비즈니스 확장을 꺼린다. 실질성장률은 싱가포르와 홍콩에는 물론이고 한국에도 뒤졌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한국에 역전됐다. 개인소비와 고정자본 형성도 2001년 IT 거품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모두는 대만해협 바로 건너 ‘세계의 공장’이자 거대시장인 중국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는 대만의 존재 이유’라고 한다. 세계 무대에서 정치·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까지 취약해진다면 대만은 무엇인가? 이달 20일 공식 취임하는 마잉주(馬英九) 새 총통의 실용주의는 이 절박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대만에 중국은 기회이자 위협이다. 기회를 최대화하고 위협을 최소화해 경제적으로 윈-윈(win-win)하자”는 것이 그의 실용이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중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통일과 독립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무력 사용도 없다는 3불(不統·不獨·不武)을 그는 천명했다. 대만과 중국 본토 양안(兩岸) 간에는 현재 서신 왕래조차 없다. 중국 본토에 가려면 홍콩을 거쳐 몇 시간 돌아가야 한다. 중국인의 대만 관광은 2002년부터 허용됐지만 하루 1000명으로 제한돼 있다. 대만 기업의 중국 본토 투자는 대만의 안보상 기업 총자산의 40%를 넘지 못한다.

이런 불편 속에서도 대만은 지난 15년 동안 누계로 3000억 달러의 직접투자를 쏟아 부으며 중국 본토에 노동집약적 생산기지를 확보했고, 현재 사업상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은 100만 명에 이른다. 내용적으로 중국은 이미 대만 최대의 교역 대상이자 투자처다.

마잉주 신임 총통의 양안관계 개선 비전은 관광과 통상·투자 면에서 모든 제한을 철폐하고 중국과의 신뢰 구축 조치를 통해 타이베이를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대중국(Greater China)권의 또 하나의 비즈니스센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마잉주와 그 회사’(Ma & Co)의 실용노선에 장애요인 또한 없지는 않다. 적잖은 대만인이 그의 친중국 노선에 불안감을 드러내고, “경제 살리기를 핑계로 대만을 중국에 팔아넘기려 한다”는 경계론 또한 만만치 않다. 대만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중국인이 대만식 민주자본주의에 ‘오염’될지도 모른다는 중국 지도층의 걱정도 큰 변수다.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과 제휴해 전문화·분업화 체제로 제조 부문에 특화하며 미국·일본 다음 가는 제3위의 IT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제조 전문에 특화된 산업구조에 원가와 스피드 등에서 ‘중국 효과’의 날개까지 장착된다면 IT 한국에 이보다 더 큰 도전도 없다. 마잉주의 실용노선이 양안관계의 대격변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역사에 가장 중대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분석이 엉뚱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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