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고급 인력’서 브로커 낀 불법 입국자까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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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04면

베이징 올림픽 서울 성화 봉송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찾은 중국인들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있다.

KBS-2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의 간판 스타였던 중국인 쑨야오(孫瑤·26·여). 그는 올해 2월 경희대 경제통상학부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쑨야오는 우연히 한국 아이들의 말소리를 듣고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 2002년 2월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쑨야오는 “베이비복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탤런트 안재욱씨에 가슴 설레며 한국어 공부를 했다”면서 “한국은 내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곳”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손요가 바라본 한국과 중국-이것이 차이나"를 발간한 그는 중국의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을 쓰기 위해 고국을 방문 중이다.

성화 봉송으로 존재 알린 중국 유학생 사회

경남지방경찰청은 지난달 15일 허위 졸업장과 성적증명서 등을 이용해 유학생 신분으로 불법 입국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 등)로 중국인 215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중 64명은 지난해 2월 중국 산둥성 유학 브로커에게 1600위안(24만원 상당)씩을 주고 받은 가짜 고교 졸업장과 성적증명서 등으로 불법 입국해 대학에 입학했다. 경찰은 다른 151명이 같은 방법으로 입국한 뒤 학교를 이탈해 수도권 공단 등에 위장 취업한 것으로 보고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중국인 유학생의 빛과 그림자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7년 4월 현재 우리나라에 유학 중인 중국인은 3만1829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64.6%에 달한다. 2001년 3200명에서 7년 만에 거의 열 배가 됐다. 올해는 4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2000년 이후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1위,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에 이어 둘째로 중국인이 선호하는 유학 국가로 자리 잡았다.

한국행을 선택하는 것은 쑨야오처럼 ‘한류 열풍’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다. 특히 한·중 교류가 늘면서 한국 유학은 취업의 보증수표로 여겨지고 있다. 연세대 김현철(중문학) 교수는 “중국에선 ‘한국 유학=취업’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산둥대 한국어과 학생의 경우 취업률이 100%”라고 말했다. 중국 내 한국 기업이든 한국에 있는 기업이든 중국 기업보다 월급이 많아 학생들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데 열심이다.

국내 대학들의 적극적인 외국인 학생 유치 경쟁도 중국 유학생이 급증한 요인이다. 학생 등록금이 대학 재정의 큰 몫을 차지하는 사립대, 특히 정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는 지방대는 ‘글로벌화’를 앞세워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서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전국 439개 대학 가운데 정부·대학의 초청 장학생을 제외한 외국인 자비 유학생이 100명 이상인 곳만 120여 곳이다. 신라대·우송대·계명대·배재대 등은 자비 유학생이 각각 500명을 넘는다. 대학 측은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뽑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기숙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생활비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중국에 비해 훨씬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해 휴학하고 불법 취업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들이 중국인 유학생을 끌어들이는 것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국내 학생들이 이공계 대학원 진학을 기피하고 있는 가운데 부족한 연구인력을 중국인 학생들이 메우고 있다. 서울대 이공계의 P교수는 “매년 석·박사 과정 신입생 7, 8명 중 2명 정도가 중국 학생”이라며 “이들이 없으면 실험실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그는 “아시아계 중에서 중국인 학생들이 가장 우수하다”며 “중국의 경우 학부에 비해 대학원 정원이 매우 적기 때문에 진학에 실패한 우수 연구인력이 한국에 온다”고 설명했다.

국내 중국인 유학생들의 구심점은 재한중국유학생연합회다. 유학생 체육대회 등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홈페이지를 통해 유학생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번 사태 이후 한때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연합회의 회장은 공안(경찰) 출신이, 부회장은 현직 검사가 맡고 있다. 이와 별도로 유학생들은 학교별, 지역별로 유학생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무늬만 학생’인 중국인도 많이 들어온다. 이들의 목적은 돈벌이다. 교과부 재외동포교육과의 박승철 사무관은 “취업비자(F-1)에 비해 유학비자(D-2)나 어학연수비자(D-4)를 받기가 쉽기 때문에 일단 학부생으로 입학한 뒤 학업에 전념하기보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다른 길로 빠지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학비자 기간(1년)을 연장하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가 되는데 지난 3월 현재 불법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은 4798명에 이른다. 중국 현지 유학원이 서류 조작 등으로 ‘가짜 유학생’을 보내더라도 대학으로선 제대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

정부는 이번 성화 봉송 과정의 폭력 사태를 계기로 유학생 비자 심사와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교과부는 각종 대학 재정사업을 할 때 평가 항목에 유학생 유치 실적을 포함해 왔다. 2005년부터 외국인 유학생 유치 실적이 좋은 대학들에 5000만원씩 지원하는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다. 박 사무관은 “한국어능력시험 등 유학자격 심사를 통과한 중국인만 뽑는 등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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