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노벨상 수상자는 '별종'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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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노벨상 가이드
피터 도어티 지음, 류운 옮김,
손상균 감수,
알마,
352쪽, 1만9800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원제 『The Beginner’s Guide to Winning the Nobel Prize』를 보고 더 그랬다. 초심자가 노벨상을 타는 법이라고, 정말 그런 게 있다고. 뜻밖이었다. 유익했다. 과학에 관심이 큰 중·고생, 혹은 이공계 대학생이 읽으면 딱 좋겠다. 일반 교양서로도 부족함이 없다. 노벨상 수상자들 얘기니 대중성도 충분하다.

결론부터 밝힌다. 노벨상을 타는 법, 없다. 지은이는 “노벨상으로 안내해줄 길라잡이 책 같은 것은 없다. 노벨상을 타는 것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더 가능성 있는 일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제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낚시꾼’? 아니다. 199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저명학자다. 인체 면역체계가 외부 바이러스를 어떻게 인식하고, 파괴하는가를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한국을 찾아 ‘노벨상 수상자가 되는 법: 과학적 삶과 발견의 본질’을 강연하기도 했다.

이 책의 주제도 ‘과학적 삶과 발견의 본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촌구석에서 태어난 저자가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미니 자서전’이면서도 세상의 편견과 무지를 이성과 합리로 깨가는 ‘과학 옹호서’이기도 하다. 저자의 타고난 유머, 인간에 대한 애정, 끝없는 탐구 등이 어울리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펼쳐 보인다.

노벨상 수상자? 뭔가 달라 보인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많은 수상자(주로 과학자)들은 ‘별종’이 아니다. 그들도 축구와 음악에 열광하고, 문학과 역사에 관심이 크다. 노벨상 수상에 감격해 연구에 소홀해진 이들도 있고, 공명심에 불타 데이터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과학자 대부분은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어제의 잘못을 바로잡는 오늘의 실험결과에 만족해한다 그 성과가 좀더 나은 내일을 열어준다면 더 없는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런 노력들이 쌓여 노벨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 책이 다루는 영역은 넓다. 과학과 사회, 과학과 정치, 과학과 경제, 과학과 종교 등을 이리저리 짚어본다. 저자의 경험도 풍부하게 넣어 즐겁게 따라갈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과학의 본질은 데이터와 증거. 합리적 이성과 객관적 실험에 따른 ‘사실’이 세상을 바꿔나간다고 믿는다. 그릇된 믿음에 따른 잘못된 정책이 자주 도마에 오른다.

지난해 11월 포항공대 국제관에서 ‘노벨상과 과학적 삶’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피터 도어티 교수. [포스텍 제공]

예컨대 소아마비 백신은 여성의 임신을 막는다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오해 때문에 예방 접종이 한때 중단됐다. 유전자변형 옥수수는 인체에 해가 없는데도 잠비아 정부는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이를 거부, 국민을 굶주림에 빠뜨리기도 했다. 과학의 성취를 믿지 않는 종교 근본주의자도 비판된다. 과학자는 물음을 던지고, 실마리를 추적하고, 숨겨진 사실을 밝혀내고,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탐정과 같다는 비유가 적절하다.

노벨상을 받은 이후 달라진 삶, 과학자들의 국제적 협력, 과학자·교수들의 치열한 경쟁 등 흥미로운 대목이 줄줄이 이어진다. 지구온난화를 경계하고, 빈곤 퇴치를 위한 국제적 연대도 주장한다. 과학자나, 정치가나, 종교인이나 최종 목적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너와 내가 함께 잘사는 세상’이다.

“과학은 박수나 상, 부를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발견과 흥분에 관한 것이다. 찾아낸 것을 놓고 관점을 바꿔가며 보고 또 보라. 불가능한 것이나 부조리한 것도 생각해보라.” 꼭 과학자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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