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무원 ‘명절 떡값’ 의혹을 폭로하겠다며 회사를 협박한 대기업 과장이 구속 기소됐다.
자동차 부품 대기업 H사의 과장인 장모(38)씨는 2005년 동료의 e-메일을 통해 재무팀의 문건 하나를 입수했다. ‘2004년 추석 하례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었다. 이 문건엔 회사 측이 유관기관 공무원들에게 명절 떡값을 지급할 것처럼 기재돼 있었다. 문건을 2년 넘게 보관하고 있던 장씨는 지난해 11월 24일 회사 간부에게 e-메일을 보냈다. “제2의 삼성 사태를 만들고 싶지 않으면 11월 30일까지 합의안을 제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시점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로비 의혹을 폭로한 지 20여 일이 지난 때였다. 삼성 사건을 흉내 내 금품을 챙기려 한 것이다.
장씨는 e-메일을 보낼 때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도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회사 측에서 반응이 없자 장씨는 “10억원을 주면 조용히 넘어가겠다”며 대포 통장 번호를 e-메일로 보냈다. “금융 추적이 안 되게 4000만원씩 개인 명의로 송금하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회사 측에서 돈을 주지 않자 올 3월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언론사에 문건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또 모 언론사 기자와 주고받은 e-메일 내용을 복사해 전송하기도 했다. 21차례에 걸쳐 협박 메일을 보낸 장씨는 결국 회사 측의 신고로 지난달 수사 당국에 체포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주현)는 1일 장씨를 공갈 미수, 사전자 기록 위작 및 행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추석 하례안엔 ‘6~7급 공무원 20여 명에게 1인당 30만~50만원을 추석 떡값으로 준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장씨 본인은 문건 내용대로 떡값이 전달됐는지 아는 게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 측은 ‘내부 문건일 뿐 실제로 집행된 게 아니다’고 부인했고, 공무원들도 혐의를 부인해 입증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수사를 종결했다”고 덧붙였다. H사 측은 “장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 수사를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승현 기자s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