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경주 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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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속철도의 강점은 직진과 강속에 있다.빨리 달리려면 똑바로 가야 한다.왜 그 엄청난 돈을 들여 고속철도를 놓는가.산업동맥인 경부간 도로가 자동차로 적체가 되니 사람은 고속철도로 빼고물류 유통을 원활히 하자는 의도였다.그러나 고속 철도 예정노선을 보면 서울~대구 구간까지는 비교적 직선으로 왔다가 갑자기 우회전하면서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게 돼있다.바로 가면 삼각형의 한 변만 거치는데 경주로 우회하니 두변을 거쳐 종착역에 이른다.시간이 배로 더 들고 공사비 또한 두배로 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속철도 속성을 가장 잘 살려 직진을 주장해야할 건설교통부가 경주 통과 우회선을 주장하고 있다.이미 정해놓은 것이니 고치면 돈이 더 들고 공기(工期)도 늦어진다는 주장이다.삼각형의 한 변은 두변의 합보다 짧다는 초보적 기하학을 무시하고 경주 도심 통과를 우기고 있으니 어느 쪽이 돈이 더 들고 어느 편이 더 공기가 늘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고속철도가 도심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역사.문화적 파괴는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이미 경주 발전(?)을 위해 허가한 경마장 부지에 착공을 하자마자 고분군 7개소,토기요지군 2개소,기와 산포지 1개소가 쏟아져 나오지 않았던가.만 지면 만질수록 파괴되고 파면 팔수록 사라지는게 고도(古都)경주라는 곳이다. 왜 역사 고고학자들이 멱살까지 잡혀가면서 고속철도의 경주 통과를 반대하고 경마장 건설을 부당하다고 보는가.이건 지역 이기주의도 아니고 학문 우월주의도 아니다 .경주를 위해,역사를 위해,민족을 위해 그 부당성을 따지고 반대하는 것이다.
지금 격론중인 경주 문제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등가적(等價的)2분논리가 아니다.역사와 유적을 말살할 것이냐,말 것이냐를 따지는 정.부당의 문제다.상식적으로도 따질 문제가 아닌 것을 놓고 건교부와 문화체육부가 맞서고 있고 개발과 보존 이라는 그럴듯한 시각으로 문제를 좁혀놓고 있다.지난 1천년 역사를 담은 도시를 역세권 발전과 경마장 건설이라는 극히 작은 이익으로 맞바꿔치기 하자는 소리일뿐이다.이를 위해 국가 간선이 우회해야 하고 역사적 유물유적이 파손돼야 하는지 그 경중은 비교해 설명할 가치조차 없다.
진짜 어미와 가짜 어미가 아이를 앞에 두고 서로 제 아이라고주장했을 때 현명한 재판관은 두 아이를 칼로 베어 나누라고 했다.진짜 어미는 아이를 죽이기 두려워 제 아이가 아니라고 양보하지 않았던가.경주를 앞에 두고 개발과 보존을 주장하는 두편중어느 쪽이 진짜 경주인이고 진짜 한국인인가.경주문제는 개발과 보존을 두루뭉수리로 타협할 소지가 없다.
아이를 자르면 죽듯 개발도 하고 보존도 하는 절충식 타협방식은 경주를 죽일뿐이다.
문체부가 내놓은 진천역 절충안도 도심통과는 면하고 있지만 유적의 보고인 남산자락을 통과하게 돼 있다.건교부의 지하화 방안은 매몰유적을 소리없이 결딴내고 지상의 역세권은 여전히 살아남기 때문에 이 또한 경주 죽이기다.고속철도가 살고 신라 천년의유적이 살면서 경주시민이 살아나는 길은 쉬운 곳에 있다.
방법은 대구에서 부산으로 직진하는 길이다.경비와 공기가 거의반으로 줄어든다.서울~부산간 전장 4백30㎞에 10조원이 든다면 ㎞당 건설경비가 2백50억원 정도.경주구간 62㎞가 반으로줄어들면 7천5백억원이 절감된다는 산술 계산이 나온다.이 돈을경주를 위해 투자하자는 것이다.전문성 없는 초보적 계산이지만 이런 관점과 개념으로 경주를 살려보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독재자 무솔리니가 두고 두고 칭찬받는 딱 한가지 일이 로마를파괴하지 않기 위해 로마근교에 신도시를 세운 일이다.경주 유적지를 벗어난 곳에 경주시민을 수용할 신도시를 건설하면 유적 때문에 받는 주민들의 불이익도 보상된다.이렇게 되면 고속철도.역사적 유물유적.경주시민 모두가 살아난다.
막 한달전 민족정기를 살리고 문화유적을 복원한다며 舊총독부 건물 철거작업을 국민적 이벤트로 치른 문민정부다.일제(日帝)가고도 경주의 맥을 끊기 위해 철도를 관통케했던 그 자리에 고속철도까지 통과시켜 민족의 장래를 망치지 않으려면 고속철도는 경주를 무시하고 대구에서 바로 부산으로 직행하는 노선을 새롭게 계획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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