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45.두레마을 대표.活貧교회목사 김진홍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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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진홍(金鎭洪)씨는 목사와 농사꾼을 겸한 사람이다.「활빈(活貧)교회 목사」이자 「두레마을 대표」다.그는 고생고생 해가며 자기의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 이름난 설교자,농(農)기업가,저술가,사회사업가다.오랫동안 사회운동가,민주투사이기도 했다.그의 말을 듣자.
『활빈교회라는 이름은 홍길동의 활빈당,거기서 땄죠.이 교회는71년 10월3일 개천절날 한양대학교 뒤편 서울 성동구 송정동74번지 청계천 하구 천막촌에 처음 세웠습니다.
나는 1941년 경북 청송에서 났습니다.우리 할아버지는 남의집 머슴이었는데 예수를 잘 믿고 하도 착실한 바람에 주인집에서데릴사위로 삼았다고 합니다.그러니까 지주와 머슴이 합해져서 우리 조상이 된 거죠.국민학교는 청송서 졸업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은 대구서 마쳤지요.우리 아버지는 내가 여섯살 때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아들 셋,딸 하나를 다 대학까지 졸업시켰습니다.
나는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는데 졸업을 하고 이제부터 예수를 제대로 믿어보자,이렇게 마음 먹었습니다.서울에 있는 장로교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학교 2학년 때였는데 예수를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나의 삶으로 체현(體現)하는 것이다,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한번 실천해보자,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유독스레 돈독합니다.그것을 한번 실천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를 찾아보았습니다.그것이 바로 아까 말한 한양대학교 뒷동네였어요.1천6백가구가 최악의 조건으로사는 동네였습니다.껌팔이,넝마주이, 심지어 남의 집 담 넘어다니는 사람,이런 인생의 밑바닥들이 모인 동네였어요.이왕이면 이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살아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나 자신 넝마주이가 되었습니다.그리고 활빈교회를 시작했지요.』 30세에 넝마주이가 된 이 신학생이 살던 극빈촌은 그 곳에 지하철 차고가들어오면서 철거된다.그는 관청을 찾아다니며 이 철거민들이 정착할 농사지을 땅을 달라고 졸랐다.전방 비무장지역안에 노는 땅을좀 달라고 했을 때는 집단 월북하 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만 듣고 거절당했다.그러다가 일제때부터 해오던 경기도 화성군남양만 간척 사업장으로 철거민 가운데 원하는 일부 가구를 데리고 이주해 정착했다.농업진흥청이 공사를 시행하는 그 간척사업에이들은 노동력을 제 공했다.사업이 완성되자 9백60만평의 농사지을 땅이 나왔다.이들은 그 일부를 배정받았다.활빈교회도 당연히 옮겨갔다.
간척지를 개척한 사람들은 마을 15개를 만들어 자기들대로 일반주민으로 살게 남기고 金목사는 10년전부터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야산을 개발해 1백50명이 한솥밥을 먹는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비슷한 「두레마을」을 시작했다.그의 말을 듣자.
『두레마을은 농촌문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에 교회적 요구를충족하려는 뜻에서 시작했습니다.우리 한국 말의 두레는 곧 공동체라는 뜻이지요.
두레마을에 살겠다고 오는 사람은 기존 사회에는 적응이 안되어발을 못붙인 사람들,장애자.우울증환자.낙오자들이 많습니다.이런사람이 모여산다는 것은 생산성보다는 종교적.복지적 측면이 강하지요.이런 사람은 사회에 혼자 던져 놓으면 사 회에 짐밖에는 될 것이 없지만 의식화하고 조직화해서 공동체적 생산활동에 투입하면 단순 노동 한가지만 해내더라도 훌륭히 자기 몫을 하는 것이 됩니다.공동체는 여러가지 기능이 합해지고 또 합할 수 있는곳이니까요.
이것이 공동체의 장점 이겠지요.』 金목사는 우리 사회에는 이런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본다.
이 점이 우리사회에 공동체가 많이 보급돼야 하는 이유라고 그는담담하게 서술한다.
나는 실은 집단생활이라는 개념에 대체로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거기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이 희생되고 강제와 획일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빛과 소금」의 역할도 너무 강조돼서는 곤란 하다는 입장을 나는 평소에 지니고 있다.빛이 너무 많으면 잠을 편안하게 자기 어렵고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은 고혈압에 걸리기 쉽게 한다는 비유적 이유 때문이다.그러나 金목사의 자활적 공동체에 대해서는 나의 이런 일반적 선입견 은 고쳐져야 했다.그리고 이 사람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빛이며,꼭 간이 필요한곳에서 소금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목사가 공동체 안의 일개 농사꾼을 겸하면 신도들과의 거리를 어떻게 지키며 목사로서의 권위는 어떻게 유지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그의 대답은 「넝마주이」로서의 무뚝뚝함과 농사꾼으로서의 소박함으로 가득하다.마치 자신은 한번도 목사였던 적이 없는 사람 같은 대답이다.
『종교가 뭡니까.인생 만사 물 흐르듯 가자는 것이 종교 아닙니까.쓸데없는 권위는 좋지 않습니다.성직자라는 것이 제도화된다는 것은 본래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요.종교 자체도 그것이 제도화되어 사람위에 군림하게 되면 종교가 갖는 자유함 ,인간의 본질인 자유함에 맞지 않지요.성직자가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道가덜 깊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좀 미련한 수단일 것입니다.
***매출 한달에 2억원 우리 두레마을에는 별로 계율이 없습니다.계율을 정하지 말고 상식 선에서 자유롭고 즐겁게 살자는 것이지요.계율이 많으면 위선자가 생기고 숨어서 위반하는 사람이생깁니다.참다운 목사라면 교인들 가슴속의 고뇌 안까지 드나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오히려 함께 농사짓고,힘을 들여서라도거리감이나 권위는 없애야겠지요.』 두레마을의 농사 실적과 한국농업 전반에 관한 의견을 물었더니 그는 참으로 명쾌하게 소신을들려준다.
『우리는 서울권에 직매장을 5개 운영하고 있습니다.비료나 농약 안쓰고 농사지은 것이면 이웃 농가 것도 파는데 요즘은 한달에 약2억원어치 팝니다.이 가운데 절반쯤이 우리 두레마을 생산물입니다.우리 1백50명의 생활은 자립했지요.경제 가 자립 못하면 모든 것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되고 말지요.주로 채소농사인데,땅은 과수원까지 합해 5만평입니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아주 대단위가 아니라면 땅이 많다고 잘 사는게 아닙니다.좁은 땅을 과학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편하고 소득 많아 낫지요.지금 있는 땅만 가지고도 식구가 한 4백명까지는 늘어도 되겠어요.
우루과이라운드(UR)때문에 농촌이 안된다는 것은 매스컴과 관변적 사고 탓입니다.한국 농업은 국제적 경쟁력 있는 부문이 많아요.과일.약초.꽃은 세계적으로 유리합니다.우리 두레마을은 돼지를 2천마리 기르는데 수지가 맞습니다.소는 불리 합니다.벼농사도 불리하고요.
한국농업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농업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UR때문에 농촌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그렇게 되려면 생산.가공.유통을 농민이 일원화해야 할 것입니다.우리는 직매장을 30개로 늘리려고 합니다.
두레마을 말고도 우리지역 유기농업 생산자를 모두 조직화.조합화하려고 합니다.
두레마을은 아예 처음부터 수확 안돼도 좋다는 생각으로 농약은물론 비료조차 한톨도 안씁니다.그대신 퇴비는 아주 많이 씁니다.앞으로는 콩나물.빵 이런 쪽으로도 나아가려고 합니다.
나 개인으로 보면 내 신앙을 실천하는 목사로서 살려다 보니까농사꾼이 된 것이지만 땅을 딛고 산다는 것은 축복입니다.정직하게 살 수 있어 좋고,흙 밟고 일을 하니까 건강해져서 좋고,나라 땅을 가꾸는 일 하니 나라 사랑할 수 있어서 좋고,좋은 먹을거리 생산해 도시 소비자 도울 수 있으니 좋고,농업은 종합 과학이라 공부 많이 하게 되어 좋고,이렇게 다섯가지가 좋으니 「일로오득(一勞五得)」이라 솔직히 서울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나는 측은하게 봐요.뭐 그렇게 좁은 데서 복작거리면서 통박 굴리고.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만들었을 때,이런 무리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성직자로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다른 성직자들과 데모를 한 일이 있었어요.그 때 내가 주범이라고 지목받아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감옥을 1년 좀 넘게 살고 나왔습니다.그때 친구들은 지금 정치도 하고 여기저기서 고루 활동하고 있는데 나는 그런 운동에 뛰어다니지 않고 맨 밑바닥에서사회 섬기는 방향을 택한 것이 참 예수님 은총이라고 여겨요.너무 위쪽 높은 데서 있으면 헷갈려서 이쪽 저쪽 왔다 갔다 시끄럽게 되는데 이 사회에는 누군가가 기초,바닥을 흔들리지 말고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 바닥 지켜야 그는 낙관적인 사람이다.그러면서도 그의 말은 시큰둥하게도 들리고 뚱하게도 들린다.이 점도 그가 가진,현대적인 괴짜라서 진짜인 목사로서의 매력일 것이다.마지막으로 그는 개신교에 관해서 말했다.
『한국 개신교의 4대 질병이라는 것이 있는데 첫째 병 고치고복 비는 무속화(巫俗化),둘째 덩치 커지는 것만 되게 좋아하는물량화,이건 종교 비즈니스지요.셋째 무조건 믿어라,목사에게 갖다바쳐라고 하는 우민화,이건 독재자가 국민 길 들이는 것과 똑같지요.네번째는 귀족화,사회에 나가면 면서기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목사 돼 갖고 외제차 타고 다니기.이런 것이 부정적인 면이지만 젊은 세대 목사들과 평신도가 벌이고 있는 개혁운동이 잘 되어가고 있어서 희망적입니다.
요는 개신교에도 수행(修行)이 들어 와야 하겠지요.종교에는 수행이 있어야 합니다.이 점에서 개신교는,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천주교가 쌓은 내공(內功)을 존중해야겠지요.나는 노동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있습니다.노동과 봉사활동에 쏠 리다 보니 목사로서의 내공은 좀 문제가 있지요.말하자면 돌팔이라.사람이란두 쪽을 겸하기가 쉽지 않아요.』 나는 자기 자신을 서슴없이 돌팔이라며 강하게 성찰하는 金목사에게 더욱 이끌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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