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의원 늘어야 정치 맑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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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잔디밭에서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 주부들과 여성의원들. 지금같기만 하면 나라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왼쪽부터 권순자씨, 김희선.박금자 의원, 임현선씨, 전재희 의원, 임수경씨. [오종택 기자]

주부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일각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여성의원이 늘어난들 '나와 무슨 상관이람?'싶기만 하다. 하지만 매스컴에는 할당제니 여성후보니 하는 말이 연일 등장하니 무심코 넘길 수만은 없는 일. 본지 주부통신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갔다. 꼭 '여성' 의원이 늘어나야 할까? 할당제가 혹 '무임승차'는 아닐까? 여성에게 정치를 맡겨보면 신물나는 비리와 육탄 정치는 막을 수 있을까? 여성의원이 많아지면 주부들 살기가 좀 좋아질까?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번 따져보자.

탄핵안 가결의 여파가 채 가라앉지 않은 지난 16일. 주부통신원 권순자(58.서울 청담동).임수경(37.서울 구의동).임현선(33.서울 무악동)씨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재희(한나라당).박금자(민주당).김희선(열린우리당) 세 여성의원을 만났다. 모두 초선인 세 의원은 4.15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해 분초를 쪼개야 할 정도로 바빴다. 연신 시계를 보면서도 주부들의 질문에 답하고 매서운 질책을 막아내느라 인터뷰는 두시간을 훌쩍 넘겼다.

정국이 정국인 만큼 인터뷰는 긴장감 속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김의원이 야당의원과 나란히 앉아 얘기할 심정이 아니라고 울분을 토로했기 때문. 분위기는 한 순간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김희선(이하 김)=지금 국회는 전쟁터예요 전쟁터. 여기 계신 분들은 내가 당한 일을 몰라서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권순자(이하 권)=탄핵안 가결 때 김의원이 국회에서 몸으로 막고 울부짖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 꼭 저래야 될까 싶었어요. 남자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야 여성을 뽑지 않을까요?

▶임현선(이하 임현)=나는 김의원을 아주 인상적으로 봤어요. 여성이라고 뒷전에 물러나 있지 않고 저렇게 온몸을 던지는구나 싶더라고요.

▶김=여자는 불의를 보고도 무조건 참아야 하나요?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것이 참다운 지성 아닌가요? 전쟁에 가서도 여성적.남성적이란 고정관념을 가지면 안되죠.

▶임수경(이하 임수)=그러면 여성.남성을 나눠서 여성의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뭔가요?

▶전재희(이하 전)=남녀차는 없지만 개인차는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다면 치워야지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 참여의 기회를 제한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금자(이하 박)=남성 정치.여성 정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대변할 그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임현=여성이 정치를 하면 깨끗해질까요? 일부 의원을 보면 여성이라고 다 깨끗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나요?

▶박= 물론이지요.다만 여성 정치인이 다수인 핀란드는 반부패지수가 세계 1위예요. 이 나라의 국가경쟁력도 10년 동안 세계 1위였어요. 여성의원들은 건설 등 비리에 연루될 소지가 큰 쪽보다는 생활정치에 관심이 많아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여성이 여성을 위해 일할 것이므로 밀어줘야 한다고 하던데 …. 16대 국회에서 세 분은 여성을 위해 뭘 했나요?

▶전=나는 예산을 성별로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성인지적 관점을 주장했어요. 모성 보호 강화에도 힘썼고요.동료 여성의원들이 성매매 관련법 제정과 유아교육법 개정,보육의 여성부 이관 등에 힘을 쏟았지요.

▶임현=여성이라고 여성만 대변하면 지역 유권자의 의지와는 다를 수도 있잖아요.

▶전=여성들이 안하는 일만 골라서 개척하는 데 전력투구해왔습니다. 다만 국회에서 보면 남성들이 이해 못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 있어요. 이런 경우는 여성이 여성을 대변해야지요.

▶임수=많은 주부가 여성의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어요. 홍보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김=나는 주부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 때문에 무관심한 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주부들도 자발성이 필요해요.

▶임수=주위에 물어보니 여성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주부도 꽤 많던데요.

▶전=아이고 큰일날 소리를 하시네요. 나는 선거를 세번 치렀는데 어느 경우도 여성들이 저를 많이 찍었어요. 여성이 출마했다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던데요.

▶김=15대 때 출마하니 40대 이상 여성들이 나를 안 찍더라고요. 20, 30대는 찍었어요. 이제는 여성이 여성을 많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수=여성 정치 신인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아요.

▶박=오랜 문화관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스이 8년 동안 대통령을 하니 '남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아이들이 많았답니다.한국의 경우 정치는 남자가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 때문에 여성을 신뢰하지 않아요.

▶권=선배 여성의원들이 별로 잘하지 못해서 신뢰를 못 받는 것은 아닌가요?

▶박=각종 의정평가에서 보면 여성의원들은 상위 30% 안에 속해 있어요. 문제는 여성을 능력보다는 외모로 평가하기 때문이에요. 여성 정치인이 많아지면 외모에 상관없이 능력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임현=여성 국회의원이 늘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 할당하는 제도는 이미 확정됐지요. 15대 때 여성의원의 비율이 3%, 16대 때 5.6%였어요. 이제는 지역구에서 출마한 여성들이 얼마나 국회에 진출하느냐의 문제예요.

▶임현=앞으로 정치 하려는 후배들에게 들려줄 말씀은?

▶김=정치는 봉사예요. 정치인은 전도사나 목사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권=솔직히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겠는데요 ….

▶임수=정치인과 주부 사이에 (의식의)갭이 크구나 하는 것을 자꾸 느끼게 되네요.

▶권=여성으로서 국회의원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부부 사이는 괜찮습니까?(웃음)

▶전=남자든 여자든 집안 식구 중에 국회의원이 있으면 고3생처럼 돌봐야 합니다. 의원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대부분은 새벽 6시에 나와서 자정쯤에 집에 들어가기가 일쑤예요. 쉬는 시간이 전혀 없어 힘듭니다.국회의원은 멀리서 보면 화려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안쓰럽고 딱한 사람들입니다.

▶임현=우리가 보기엔 의원들이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가요?

▶김=집안에서 주부 역할은 아예 못하지요. 술 한잔도 못 마시지만 지역구의 상가집에 다 다닙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가정을 희생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어요.

▶임수=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국회의원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줄 몰랐어요.

▶전=법 하나를 만들려면 현장도 가보고 연구도 해야 합니다. 하나의 법안을 만들기 위해 2년씩 준비하는 경우도 있어요.

▶권=몇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요. 교사인 내 친구 말이 30년 전 아이를 맡기던 때나 요즘 손자를 돌봐주는 곳이나 별 변함이 없다는 거예요. 여성전용병원.노인병원들도 필요하고요. 여성들이 답답해하고 원하는 게 많거든요. 제발 여성의원들만이라도 주부들의 요구와 관심거리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

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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