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어려운 두바이 모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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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39면

지난주 두바이를 다녀왔다. 지난 20년 사이에 두바이는 한적한 사막의 어촌에서 최첨단 허브 국가로 변모했다. 상하이 푸둥을 몇 단계 뛰어 넘는 상전벽해의 변화다. 삼성이 건설 중인 160층의 버즈 두바이, 객실 2000개가 넘는 애틀랜티스 호텔, 그리고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인공 섬 ‘팜 주메이라’ 등 세계 최고·최대의 랜드마크가 두바이 도처에 건설되고 있다.

특히 두바이의 경제적 역동성은 주목할 만하다. 엄격히 말해 두바이는 산유국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3%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난 7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3%를 기록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3만50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중동, 서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의 관광·금융·물류·교육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기적’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왜 두바이를 벤치마크하려 하는지 현지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실 요즈음 국제자유지역으로의 변모를 모색하고 있는 인천,제주, 그리고 부산 등지의 정치인·관료·기업인들도 두바이를 새로운 모범사례로 설정하고 열심히 방문 학습하고 있다. 그러나 두바이 모델의 한국 적용은 쉽지 않다고 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세제가 경직되고 규제가 구조화된 나라에서 두바이 모델은 어불성설이라 하겠다. 두바이에서는 외국인 투자기업의 소유를 100% 인정할 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수입관세를 전혀 부과하지 않는다. 규제 또한 자유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최소한이다. 이들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 역시 완벽하다. 한국이 따라갈 수 있을까.

두바이 경제개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고 기업이다. 두바이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에마르(EMAAR)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부동산회사와 두바이 지주(Dubai Holdings)라는 투자회사가 인프라를 포함, 부동산·관광·금융·교육·의료·통신 등 거의 모든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자금 투자도 이 두 기업이 주도적으로 한다. ‘선(先)두바이, 후(後)외국자본’ 모델이다. 이 두 기업의 자금력 또한 막강하다. 두바이 지주회사의 투자 기금만 해도 2000억 달러를 훨씬 넘는다.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 알막툼의 큰 그림을 정부 조직이 아니라 이 두 기업이 막대한 자금력과 과감한 결단, 그리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관이 주도하고 국내 자본이 외면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와 인천·광양·부산·진해의 경제자유구역과는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 국내 자본도 참여하지 않고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간섭과 이들 간 갈등으로 이골이 난 한국의 경제 특구에 어느 외국기업이 투자를 하겠는가.

세계화에 대한 시각 차도 문제시 된다. 두바이 전체 인구 160만 명 중 현지인은 18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두바이의 경제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우수한 외국 인력을 고액의 연봉으로 모셔오고 이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 이는 “나라를 부흥시키는 데 국적 타령은 필요 없다”는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의 국정 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의 경제특구 관련 조직에 우수한 외국인 인재가 몇 명이나 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사람 우수한데 외국인은 왜”라는 국수주의적 답변이 나오면 할 말은 없지만.

국내외적 여건도 다르다. 무엇보다 지근거리에 있는 인도·파키스탄의 값싼 노동자 유입이 두바이의 경쟁 우위를 강화해 주고 있다. 버즈 두바이 120층 현장에서 하루 종일 작업하는 인도인 노무자 월급이 20만원에 불과하다. 또한 추방의 위협 때문에 노사 쟁의도 없다. 이와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인도·러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의 신흥 부유층 등장과 두바이에 대한 이들의 집중적 투자도 한몫하고 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여건이다.

마지막으로 두바이는 막툼 가문의 세습 군주제 국가다. 그래서 기업형 도시국가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바이 모델의 한국 적용이 가능할까. 다분히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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