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사기꾼들과 웃으며 노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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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13면

뮤지컬 ‘나쁜 녀석들’
5월 12일까지 두산 아트센터 연강홀
평일 오후 8시, 주말·공휴일 오후 3시·7시(월 쉼) 문의 1588-5212

‘프로듀서스 이후 최고의 코미디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는 잠시 잊자. ‘프로듀서스’를 몰라도 즐기면 그만이다. 극은 왁자하고 우스꽝스럽고 활기차다. 재즈·팝·컨트리·발라드를 넘나드는 음악은 귀에 잘 감기고, 스윙·살사·탱고를 위시한 사교댄스는 눈요기로 충분하다. 게다가 이들 사기꾼은 능글맞은 한편 어수룩하다. 얼마나 번드르르하게 사기를 잘 치나, 그걸 지켜보자는 거다.

휴양도시 리비에라에 살면서 자신을 망명한 왕자라고 속이는 로렌스(김우형·강필석 더블)는 초보 사기꾼 프레디(김도현)와 사기 내기를 벌이게 된다. 미국 갑부의 딸(로 보이는) 크리스틴(윤공주)을 유혹해 누가 먼저 5만 달러를 뜯어내는가 하는 것.

실연당한 하반신 마비 환자로 위장한 프레디와 명의를 자칭하는 로렌스의 엎치락뒤치락 속임수가 극의 재미를 돋우고, 로맨스를 뒤집는 막판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게 없다. 프랭크 오즈 감독의 영화 ‘화려한 사기꾼’을 무대로 옮긴 ‘무비컬’이기에 반전도 뻔하다면 뻔하다.

그래도 웃긴다. 웃음의 장치는 극 몰입을 확 깨버리는 데 있다. “난 미국인 역할을 하는 한국인이랍니다” “어머? 저도 노인 역할을 하는 젊은이예요” 같은 대사는 과장된 코미디를 지켜보던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2막 시작에서 1막을 되풀이 보여주는 장면에선 “이거 아까 한 거잖아” 하며 능청을 떤다. 브로드웨이 무대의 문법을 비꼬는 농담이다. 스태프가 올라와 극이 끝났다 싶더니 그것 역시 극의 일부다. 그러고 보니 공연 전 주의사항을 전하던 여자도 알고 보니 배우였다.

각색을 직접 담당한 황재헌 연출은 “원작 자체가 ‘지금 공연 중’이란 걸 끊임없이 자극하고 일깨우는 요소가 있는데, 그걸 한국식으로 바꿔 웃음을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웃긴 것은 무대 위 사기꾼들의 행각이 아니라 그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포장해 내는 뮤지컬이라는 거다. “예술은 고등 사기”라고 일갈했던 고 백남준 선생의 말은 옳다. 그러니 이 ‘사기’를 즐기지 못한다면 극장을 나올 때 고개를 갸우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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