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시대명음반>빅토리아 "미사 비디 스페치오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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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지난 93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런던의 퀸엘리자베스홀에서 탈리스 스콜라스의 연주회를 들은 적이 있다.
값도 싸고 규모도 작으려니와 무엇보다 정제된 음색과 정결한 하모니가 화려하고 현란한 세속적 성격을 완전히 정화시켜 버린다. 하지만 이토록 탈속적(脫俗的)인 스콜라스마저도 데이비드 힐이 이끄는 웨스트민스터 성당합창단 앞에서는 그 신성한 빛을 잃고 오히려 기교적인 느낌을 준다.
이 음반에 실린 빅토리아의 4성부 아베마리아를 듣고나면 이 말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만큼 이들의 연주는무상무념(無想無念)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1548~1611)는 스페인 르네상스의 최후를 장식하는대작곡가.
한 세기쯤 앞섰던 플랑드르 출신의 거장 조스캥 데 프레,동시대의 팔리스트리나.라소와 더불어 르네상스 최고의 작곡가로 평가된다.사제의 신분으로 평생 종교음악만 작곡한 음악가답게 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순수하고 아름답다.
이 음반에 실린 그의 모테토 『아베 마리아』『아베 마리스 스텔라』는 이처럼 투명한 맑음과 경건한 그의 품성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걸작이다.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장 수준높은 음악의 한 형태인 아카펠라(무반주합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또 『미사 비디 스페치오삼』(「나는 그녀를 보았네」주제에 의한 미사)은 함께 수록된 같은 제목의 세속 모테토를 선율적 모태로 작곡한 것.
르네상스 전성기의 작품답게 풍부한 화성과 간명한 선율로 이뤄진 폴리포니의 정수(精髓)를 전해준다.또 이 미사곡에서는 제임스 오도넬의 오르간 콘티누오가 사용돼 음악의 깊이와 두께를 더하고 있다.
〈Hyperion CDA 6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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