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박동선과 코리아게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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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동선씨는 1935년 평남 순천에서 고을갑부 박미수씨의 3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바로 위의 형이 87년 자살한 범양전용선 박건석회장.
47년 월남하여 아버지가 이사로 있던 배재중학에 입학,52년미국에 유학하여 조지타운大에 들어갔다.
대학시절 학내정치에 열중해 학생회장에 당선됐다.동급생이 운전하는 링컨 컨티넨탈을 타고 파티장을 다니는 이 동양학생은 여학생들의 우상이기도 했다.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참석하는 배짱도그때 길렀다.
62년 워싱턴에서 「조지타운 클럽」을 설립,전직대통령들을 포함하여 워싱턴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이 회원명단에 올랐다.더러는 본인도 몰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 미국은 공법(PL)480자금으로 한국에 쌀을 수출하고 있었다. 박동선씨는 68년 정일권(丁一權)씨의 도움으로 조달청의 쌀수입 대리인이 된다.당 50센트이던 커미션을 10달러이상으로 올려받았다.
76년 코리아게이트가 터질 때까지 그가 받은 커미션은 1천4백만달러 정도라고.그 돈의 일부로 의회를 상대로 주한미군감축 반대 로비를 했다.거물급의원들은 거의 관련되었다.
수사가 시작될 즈음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보좌관 낸시 하우의 남편이 권총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코리아게이트는 언론의 「총아」가 된다.낸시는 박동선씨의 사람이었다.
사건은 워싱턴 포스트의 맹렬여기자 맥시 체셔의 추적을 받아 천하에 공개되고,박동선씨는 한국으로 출국.그의 미국인도와 증언을 둘러싸고 韓美관계가 악화되었다가 미국에 가서 증언하는 대신미국이 기소를 취하하는 쪽으로 타협.79년 사건 은 공식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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