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60만~80만 명 노예로 팔려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인도의 어린이 노동자들, 서부 아프리카와 스리랑카·미얀마의 10대 소년병들, 집창촌으로 팔려 가는 동유럽 여성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각종 착취에 시달리는 ‘현대판 노예’가 약 240만 명에 이른다는 게 국제노동기구(ILO)의 추산이다. 미국 인권단체 ‘바이털 보이시스(Vital Voices)’의 웬치 유 퍼킨스(사진) 부회장은 22일 “해마다 인신매매를 통해 다른 나라로 끌려가 노예 상태로 전락하는 이가 60만~80만 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만 중남미 등지로부터 연간 1만4500~1만7500명이 가정부, 농업 노동자 등으로 팔려 온다”고 말했다.

퍼킨스 부회장은 주한 미국대사관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2000년 인신매매 방지법을 제정하는 등 정부·민간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 근절하지 못했다”며 “여러 나라에 걸친 범죄이므로 제대로 막자면 국가 간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인신매매가 이같이 성행하는 건 관련 수익이 연간 95억 달러(약 9조5000억원)나 될 만큼 막대하기 때문이다. 마약 밀매 다음으로 큰 돈벌이가 되는 범죄다.

이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강압·사기·폭력으로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는 범죄집단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퍼킨스 부회장은 “처음엔 자발적으로 시작했어도 이후 예상치 않은 착취를 당하게 된다면 인신매매”라고 정의했다. 예컨대 베트남인 신부가 한국에 자의로 시집 왔다고 해도 남편 될 사람이 중개인이 소개했던 것과 판이하거나 결혼 생활 중 언어적·신체적 학대를 받는다면 인신매매 피해자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털 보이시스’는 다른 비정부기구(NGO)들과 연대해 관련 법안 및 정책이 도입되도록 힘쓰고 있다.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 활동도 벌인다. 음악 전문 방송사인 MTV와 손잡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펼치는 ‘EXIT(End Exploitation and Trafficking·인신매매 방지)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이 캠페인의 아시아 쪽 홍보대사는 한국 가수 비가 맡고 있다.

1997년 당시 미 대통령 부인이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정부기구로 발족한 ‘바이털 보이시스’는 2000년 민간 단체로 전환했다. 대만 출신인 퍼킨스는 시카고대에서 석사(국제관계학)를 마친 뒤 미국 내 중국 이민자 인권보호기구에서 일하다 4년 전 이 단체에 합류했다.

한국을 처음 찾은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등 정부 관계자 및 민간 전문가들에게 국제적 인신매매의 실상을 알린 뒤 26일 출국한다.

글·사진=신예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