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는 英테스코 그룹사 '인재사관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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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재무기획본부장으로 근무하던 황순일(43) 상무는 지난해 말 그룹본사인 영국 테스코(TESCO)로부터 뜻밖의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008년 1월 부로 테스코 말레이시아 CFO(재무총괄 임원)로 발령이 난다는 것이다. 황 상무가 놀란 이유는 국내 인력이 해외 그룹사 임원으로 부임한 것도, 그룹 본사가 있는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출신이 CFO를 맡은 것도 창사 이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출신 황순일 CFO

현재 테스코 말레이시아 지점을 이끌고 있는 중추 인력 가운데 홈플러스 출신 한국파는 황 상무 말고도 많다. 최근 테스코 말레이시아 CEO로 부임한 크리스 부시도 홈플러스 COO(운영촐괄임원) 출신이다. 테스코 말레이시아는 하이퍼마켓 13개, 소규모 슈퍼 7개 등 매장이 20개로 연간 식료품 매출액만 5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중요 현지 법인 중 하나다.

한국파 임원에 대한 현지 직원들의 반응도 좋다. 테스코 말레이시아 기업담당 및 법무 팀 이사 아즐람 샤 알리아스는 15일 콸라룸푸르 암팡에 있는 매장을 방문한 한국 기자들에게 “홈플러스 출신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일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홈플러스 출신들은 전세계 그룹사에서 주요 요직을 맡고 있다. 국내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의 해외 사업장 파견 사례가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할 때 홈플러스는 글로벌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홈플러스 해외상품팀 팀장이었던 신동화 부장은 지난달 영국을 포함한 테스코 그룹의 중국 상품 소싱 조직인 상하이 지점의 지점장 겸 아시아 지역 비식품 소싱 총괄이라는 직책을 맡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설 관리 규정 및 프로세스 업무를 수행했던 황준필 과장은 6개월간의 해외 근무를 마치고 지난해 홈플러스로 복귀했다.

비슷한 시기에 정보서비스 부문 박상준 과장은 영국 테스코의 IT 부서로 옮겨 현재 전세계 테스코 그룹사의 IT 시스템 개선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전사운영모델 사무국 박종관 과장은 ‘FRESH & EASY’라는 브랜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테스코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테스코 말레이시아 암팡점 전경

국내파 홈플러스 출신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운영ㆍ재무ㆍ점포ㆍ상품ㆍIT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우수한 성과와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영어 실력이나 국제 감각은 기본이다. 황 상무는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출신으로 미국 AICPA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영국 본사에서는 그가 입사하자마자 일찌감치 관심을 보이며 본사 근무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홈플러스 설도원 전무는 “우수한 인재들은 장기 플랜에 맞춰 능력을 개발해 주고 있다”며 “전적으로 회사에서 지원하고 교육해주는 등 다방면적인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국 테스코 임직원 사이에서도 “그룹사 CEO가 되려면 한국을 거쳐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홈플러스에서 한국 주재원을 지냈던 영국 출신 임원들이 한국 부임 기간이 끝날 때쯤이면 모두 다른 그룹사의 CEO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2002~2004년 서울에서 근무했던 캐빈 그레이스 전 홈플러스 COO는 현재 폴란드에서, 2003~2005년 전 홈플러스 상품 부문장을 거쳐 COO로 재임했던 사이먼 킹은 터키에서 CEO를 맡고 있다.

콸라룸푸르=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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