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연구원 이지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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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 부릉~”
4월 셋째 주 일요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엔진의 굉음이 GT레이스의 시작을 알린다. 서킷엔 긴장이 감돈다. 도열한 20여 대의 레이싱 카 중에 분홍색 투스카니 엘리사가 유난히 눈에 띈다. 헬멧을 쓰고 앉아 있는 선수는 GT클래스의 유일한 여자 레이서 이지현(35)씨.
 이씨는 주중과 주말, 색다른 삶을 산다. 평소엔 삼성전자 반도체 디램(DRAM) 연구원이지만 주말이면 레이서로 변신해 제 2의 인생을 연다.
 본격적으로 레이싱에 빠져들게 된 건 2004년. 평소 이씨의 괄괄하고 화끈한 성격을 아는 지인으로부터 이벤트성 아마추어 레이스(스피드페스티발 클릭전)에 함께 참가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주로 메인 레이서가 경기를 운영하고 세컨드 레이서는 드라이브하듯 즐기면 되는 경기였다. 부담 없이 세컨드 레이서로 달리는데 앞차를 추월하는 맛이 남달랐다. 별다른 연습도 없었던 터에 첫 출전에서 2위로 골인. 아무리 이벤트성 대회였다지만 의외의 선전이었다.
 그 때부터 이씨는 레이스에 빠져들었다.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차를 샀고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며 기량을 쌓아갔지만 순위에 대한 욕심은 크게 내지 않는다. 취미로 시작했으니 즐기면 그만이었다.
 “평일에는 모니터만 보고 앉아서 일만 하는데 주말에 자동차 경기장에 나와 달리면 일주일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혼자 질주하기보다 여럿이 엎치락뒤치락 하며 경쟁하는 맛이 매력이죠. 사회생활에서 겪는 경쟁과는 딴판입니다.”
 레이싱은 속도가 주는 카타르시스에 짜릿한 경쟁구도가 더해져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느낌을 준단다. 하지만 언제든 회사생활이 우선이라는 이씨의 생각은 단호하다. “직장생활이 내 스폰서잖아요. 스폰서를 잃으면 취미고 뭐고 없어지는 거죠. 주말에 경기와 회사일이 겹치면 일단은 회사로 달려갑니다. 일과 취미 사이를 조화롭게 오가며 균형을 이루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이씨.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에 지루함이 끼여들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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