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홈뉴패밀리>9.딴 주머니 차는 맞벌이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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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0~50대 중년의 맞벌이 부부들이 나누는 대화.『당신 돈도내돈이고,내 돈도 당신 돈이야.둘이 합쳐 알뜰히 모아봅시다.』요즘 20~30대 초반의 신세대 맞벌이 부부간에 나누는 말.『내 돈은 내 돈이고,당신 돈은 당신 돈이야.각자 능력껏 벌어 잘 관리하자구.』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하지만 요즘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는 돈 문제 만큼은 「일심이체(一心異體)」라는 새로운 풍속이 일고 있다.고생해 번 돈을 합쳐 서로 상의하며 알뜰하게 쓰기보다는 기본 생활비만 공동으로 부담하고 나머 지는 따로 주머니를 만들어 각자 관리.사용하는 독립채산제인 셈이다.
회사원 崔모(28.여)씨는 이제 결혼한지 3개월밖에 안된 햇병아리 주부.그는 역시 샐러리맨인 동갑내기 남편 徐모씨와 깨가쏟아지는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돈문제 만큼은 철저한 개인플레이다.이들은 월급을 받으면 각각 20여만원씩 생활비를 내고 나머지는 「인 마이 포켓」.생활비는 기본적으로 쌀과 각종 식료품.생필품등을 구입하는데 쓰고 외식이나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길때에는 전액 개인부담이다.
崔씨에게 필요한 옷.화장품등을 살 때는 그 비용이 전액 崔씨주머니에서 나오고,남편의 학원비는 물론 徐씨 부담이다.부부동반외식을 할 때는 돌아가면서 비용을 낼 정도로 철저하다.
다만 양가 부모님 생일이라든지 특별지출이 필요할 때는 각자 반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굳이 어떤 생각을 갖고 독립채산제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미혼때부터 알아서 내 돈을 써왔는데 결혼했다고 남편의 월급을 내가 챙겨 관리한다는게 부담스럽더군요.그래서 미혼 때처럼 서로책임따지지 않고 독립적으로 돈을 쓰기로 했습니다 .』 그렇다고이들은 흥청망청하는 철없는 신세대가 아니다.남편 徐씨는 총각시절부터 매달 60만원씩 적금을 부어 오고 있으며,이미 만기된 적금통장을 하나 갖고 있는 崔씨 역시 추가로 매월 40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다.이들의 목표는 2~3 년안에 서로의 돈을 합해 자그마한 집을 마련하는 것.文모(31.여.서울송파구잠실동)씨는 전업주부이지만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용돈 정도는 벌면서 남편과 독립채산제를 하고 있다.생활비는 전적으로 남편이 부담하지만 개인저축과 용돈은 각자 책임진다.남편은 월급에서 생활비 40만원을 내놓고 나머지는 자신이 관리한다.주택부금을 직접 불입하며 용돈도 스스로 결정한다.
반면 文씨는 중.고생 영어과외로 한 달 용돈을 벌고 일부는 저축하기도 한다.그가 굳이 남편의 월급을 챙기지 않는 이유는 『괜히 남편에게 종속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부부 독립채산제는 미국등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일반화된현상.미국에서 4년간 생활한 적이 있는 나문자(羅文子.39.서울서초구서초동)씨는 『생활비관리를 위해 미국은행에 남편이름으로통장을 개설했더니 은행직원이 「이래도 괜찮겠느 냐」며 내 이름으로 통장개설을 권해 당황한적이 있었다』고 소개했다.이대 가정관리학과 문숙재(文淑才.50)교수는 『부부가 각자 돈관리를 한다고 부부간의 연대감이나 가정의 응집력이 약화되지는 않는다』면서 『오히려 돈을 한 사람이 관리하 면서 나타날 수 있는 종속성이라는 문제가 사라지기 때문에 독립채산제의 확산은 당연한 추세』라고 말했다.
〈金鍾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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