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서 ‘땅 좀 판다’는 사람 모두 온 것 같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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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16면

페루 남부 마르코나 광산 현장에서 대한광업진흥공사 류민걸 과장(왼쪽에서 둘째)이 외국 기술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민걸 제공

이곳 페루에서는 광산 전쟁이 한창입니다. 뉴아메리칸, 리오 틴토, BHP 빌리턴과 같은 광업 메이저회사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땅 좀 판다’는 사람은 모두 온 것 같습니다. 현지 법인만 180개가 넘습니다. 이들은 각자 노다지를 꿈꾸며 300여 개의 광산을 파헤쳐 갑니다. 자원 외교를 강화 중인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로비를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알루미늄공사를 통해 BHP 빌리턴의 지분 9%를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가능성이 보이는 프로젝트는 모두 싹쓸이하겠다는 전략이죠.

‘자원 전쟁터’ 페루에서 보내온 편지

제가 있는 수도 리마에서 400㎞ 남쪽으로 가면 저희가 개발 중인 마르코나 동광산이 있습니다. 끝없는 사막 속에 덩그러니 있는 동광산입니다. 자외선이 강해 탐사를 하던 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리는 것은 물론이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몸이 약간 뜰 정도입니다. 낮에는 무덥고 습하며, 밤에는 춥습니다.

이곳에는 120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중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 두 명입니다. 2005년 8월 이곳에 온 저는 합작회사 직원 겸 한국 측 파견자로서 사업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 한국과 캐나다 간 합작계약이 체결돼 현재 시추 작업 중이지요. 개발에 성공하면 국내로 구리를 반입할 계획입니다.

남미는 매력적인 자원 시장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자원탐사가 한창인 곳은 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남미·아프리카입니다. 중국의 경우 이익을 위한 투자는 될 수 있어도 국가 차원의 광물자원 확보에는 어려움이 많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자원은 많지만 주로 에너지자원인 데다 자원민족주의가 강해 탐사가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세계 금속시장의 관심은 남미에 쏠려 있습니다. 특히 페루의 경우는 자원민족주의가 강하지 않고 전체 국토의 50% 이상이 미 탐사지역으로 앞으로 개발 가능성이 큰 곳입니다. 8%가 넘는 경제성장률이나 총수출(279억 달러)에서 광업 수출(173억 달러, 2007년 기준)의 비율이 60%가 넘는 것도 장점입니다.

자원 경쟁에서 한국의 위치는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강대국들은 풍부한 자금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전 세계 프로젝트를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10년이 넘는 경제 침체기에도 자원 참여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칠레의 대형 동광산 지분을 대부분 인수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우리는 있는 것도 모두 처분해 버렸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남미 국민들은 외국 투자자가 자원만 착취하고 자국 발전은 등한시한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페루에 진출해 있는 몇몇 외국계 기업은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한국적 정(情)을 어필하면서 현지인과 공생할 수 있는 전략을 펼친다면 자원 탐사가 더 순조로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페루에서 ‘자주 전화하고 얼굴을 익히는 식’의 지극히 한국적 네트워크 형성법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고려아연, LS니코동제련 같은 비철금속 제련소와 포스코와 같은 세계적 기업이 있습니다. 이들의 기술력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으며 세계 광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업들과 함께 틈새시장에 진출해 충분한 역량을 마련한 뒤에는 대형 프로젝트에 뛰어들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자원탐사를 성공시키려면 꾸준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인재들을 해외 현장 경험이 풍부한 광물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한 마스터플랜도 필수적입니다. 사실 지금 광업계에서는 국내뿐만이 아니고 해외 광산 개발을 하는 데 ‘허리’가 되는 중간급 관리자가 전무한 실정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기술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그동안 광업계가 침체된 것도 있지만 경제적 논리에 따라 직접 개발보다는 수입에만 의존해 왔던 우리나라 기업들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페루에 온 지도 벌써 2년7개월이 좀 넘었습니다. 사실 서른일곱의 나이에 페루의 오지로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에 온 후에도 언어 장벽과 문화차이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후 모습을 생각한다면 잘한 결정이자 매력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나가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대한민국도 조만간 자원 강국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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