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 땐 ‘캠프 데이비드’ 진짜 친구는 ‘크로퍼드’로 초대

미국의 정상외교에는 회담 장소의 정치학이 작용한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미국을 찾은 각국 정상을 부시 대통령이 어디에서 맞느냐가 그 나라와의 관계와 정상 간 친소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비춰져 왔다.

부시 행정부가 활용하는 정상회담 장소는 세 곳이다. 먼저 대통령의 집무실 격인 백악관. 일반적인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공식 장소다. 다음은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초대받은 ‘캠프 데이비드’. 미국 대통령의 별장이다.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나라들을 주로 초대한다. 워싱턴과 가까워(북방 97㎞) 공(公)과 사(私)가 절충된 성격의 정상외교에 활용한다. 하이라이트는 부시 대통령이 고향 텍사스에 갖고 있는 크로퍼드 개인 목장이다. 친구 사이로 지낼 정도로 친근하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국가 수반들을 초청한다.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캠프 데이비드를 찾은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다. 모두 다 백악관에서 회담을 했다. 캠프 데이비드는 부시 대통령 이전부터 미국 대통령들이 정상회담장으로 삼아온 곳이다. 풍광 좋은 캐토틱 산 안에 자리하고 있다. 미 연방공무원의 가족 휴양소로 쓰이던 시설을 건강이 좋지 않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 별장으로 개조했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다섯 살 난 자신의 손자 이름을 따 캠프 데이비드로 불렀다. 이곳에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종식 방안을 논의했고, 지미 카터 대통령은 78년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불러 평화협정(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도록 중재했다.

부시 대통령은 10여 개국 수반을 이곳과 크로퍼드 목장으로 번갈아 부르며 각별한 신뢰감을 표현했다. 2001년 2월 13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한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등 우방 정상들을 초청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전에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가 많았다.

부시 대통령 부부가 99년 매입한 크로퍼드 목장은 서부 백악관(The West White House)으로 불린다. 친밀감이 돋보이는 파격적 의전이 펼쳐지는 장소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과 테러와의 전쟁, 이란 문제 등 심각한 현안 돌파를 위해 중국과 영국·일본·러시아의 정상들을 한 번씩 목장으로 불렀다. 2001년 11월 14일 푸틴 대통령을 처음으로 초대해 텍사스식 만찬을 제공했다. 2002년 10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크로퍼드 목장 방문은 국제사회에 큰 화젯거리였다.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은 크로퍼드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을 북핵 문제 해결의 한 축으로 엮어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주석도 지난해 발간한 외교실록에서 크로퍼드 회고담을 소개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장 주석에게 “백악관은 우리 집이 아니다. 여기가 진정한 우리 집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친구만 초대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 주석의 뒤를 이은 후진타오 주석과 부시 대통령은 위안화 절상, 이란 문제 대처 등에서 현격한 입장 차를 보이면서 의전을 두고서도 외교적 승강이를 벌이게 된다. 후 주석은 결국 워싱턴 시내 국빈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머물렀다.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크로퍼드 회동은 각별했다. 2001년 3월 캠프 데이비드에 이어 2003년 5월 목장으로 다시 고이즈미를 초대한 부시 대통령은 격의 없는 ‘카우보이’ 의전으로 그를 맞았다. 부시는 고이즈미와 함께 중앙정보국(CIA)의 일일 정보브리핑을 받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16, 17일 워싱턴에서 이틀 밤을 지낸 블레어 하우스는 미국 대통령의 공식 영빈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망명 중이던 샤를 드골 프랑스 장군이 44년 6월 머문 것을 비롯해 수많은 외국 정상이 이곳을 거쳐갔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식 하루 전날 숙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블레어 하우스에 외국 수반이 머물 때는 건물 입구에 그 나라 국기가 게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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