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혁신도시 질문하자 “안 할 수 있을까예?”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19일 오전 10시30분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의 작은 공터. ‘만남의 광장’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방문객 200여 명과 마주섰다. “전라도 여수에서 왔습니다.” “아, 여수요.” “제주 성산포입니다.” “제주에서 오신 분들, 이 모자가 제주 갈옷 천으로 만든 겁니다.” 인사말을 나누던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혁신도시를 안 한다고 하던데 (경남 혁신도시가 들어설) 진주는 어쩝니까”라는 질문이 나오자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 경상도 사투리로 한마디 던졌다. “안 할 수 있을까예?”

노 전 대통령이 등장하기 2분 전쯤엔 이런 광경이 있었다. 관광객 중 한 명이 즉석 제안을 했다. “자, 대통령님 나오게 우리 한번 불러봅시다. 하나, 둘, 셋!” 그의 구령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일제히 입에 두 손을 대고 “나와 주세요”라고 외쳤다. 잠시 후 집 대문이 열리며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쓴 노 전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전날 오후 휴가를 마치고 귀가했던 노 전 대통령은 박수와 환호 속에 10m 정도를 걸어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다.

이 같은 장면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2월 25일) 이후 매일 여러 차례 반복됐다. 노 전 대통령은 13일 “평일엔 6번 정도, 주말엔 10번 정도 나온다”고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집 밖에 나오는 이유는 물론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찾기 때문이다. 본지 취재진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봉하마을을 취재했을 때는 평일 500명, 휴일 3000명 정도가 이곳을 다녀갔다.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하자 방문객이 점점 늘어 요즘엔 평일 3000명, 주말 7000명 정도가 다녀간다. 1만 명 이상 찾아오는 날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휴가를 다녀온 지난 14∼18일에도 매일 3000여 명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집 안에 있으면 기분이 어떨까.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66)씨는 “잠시도 편하게 쉬지 못하겠더라”고 밝혔다. 그는 “한번 점심을 먹는데 밖에서 ‘대통령 나와 달라’고 소리를 치더라”며 “밥 먹기 전에 한번 나가서 손 흔들어주고 왔는데 그때 관광객들은 다 돌아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밥 먹다 말고 나가서 인사하고 왔다”며 “밥 먹고 또 차 마시는데 밖에서 불러대서 또 나가고…”라고 고충을 알려줬다.

요즘 권양숙 여사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 방문객들이 불평하는 경우가 생긴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노 전 대통령의 누나 영옥(70)씨가 해줬다.“얼마 전에 가봤더니 동생 부인(권 여사)이 몸살이 걸렸더라. 이사 와서 일도 많은 데다 하도 사람들이 밖에서 보자니까…. 영 사는 게 불편해 보이더라.”노 전 대통령의 귀향은 마을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평일에도 100대 가까운 관광버스가 찾아오고 주말엔 마을 입구부터 길이 꽉 막힌다. 외지인 방문이 늘면서 김해 사람들은 일단 신난 표정이다. 12일 봉하마을로 가기 위해 탄 택시의 기사 김흥기(62)씨는 “예전엔 봉하마을에 하루 한두 번 들어갔는데 요즘엔 대여섯 번도 들어간다. 너무 좋다”고 자랑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무전기를 통해 “손님 태우고 봉하마을 간다”는 동료 기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생겼고 사저로 들어가는 길엔 노점상이 즐비하다.이처럼 방문객이 몰리는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우리 국민의 온정주의”를 꼽았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엔 국민들이 비판을 많이 했는데 퇴임하고 나니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부자 내각’이 부각됐는데 노 전 대통령이 수퍼에서 담배 피우는 사진 같은 걸 보면서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산다’는 서민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어필하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주말에 1만 명 이상 모인다니 국민들이 신선한 충격도 느끼고 ‘정치를 왜 그리 했느냐’는 등의 가슴에 묻어 둔 말을 하고 싶어 봉하마을을 찾는 것 같다”는 건 이준한 인천대 교수의 생각이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가 재임 중엔 ‘싸움닭 같은 이미지’로 퇴색했는데 퇴임 후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이미지로 돌아왔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을 ‘구경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도 봉하마을행을 이끈다”고 진단했다.방문객 반응도 얼추 그렇다. “옛날로 치면 임금인데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달려왔다.”(전남 순천의 신미영씨), “서울에 있는 다른 대통령보다 백번 낫다.”(경남 김해의 최상현씨)

하지만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마산에서 온 박모씨는 “저 사람 성격에 여기 박혀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 못 버텨 또 서울로 갈 것”이라고 말했고, 대구에서 방문한 김모씨는 “저렇게 조용히 있을 양반이 아니라서 또 말 한마디 잘못해 관광객 반 토막 날까 무섭다”고 걱정했다.20일부터 봉하마을의 일정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월요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방문객을 만나지 않고 휴식하기로 한 것.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엔 화요일에 쉰다. 노 전 대통령 내외는 20일 종친회 행사 참석을 위해 광주를 방문하고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다.

강주안 기자 , 봉하마을=김기정 인턴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 [J-HOT] 좋은 관계 땐 '캠프 데이비드' 진짜 친구는…

▶ [J-HOT] 17대 국회 후원금 1위 이계안, 2위 박근혜

▶ [J-HOT] 盧 누나 "올케 몸살…영 사는게 불편해보여"

▶ [J-HOT] 여성 정치인 스캔들 적은 이유 알고보니…

▶ [J-HOT] '포스트 이재오'…與주류 세력재편 조짐

▶ [J-HOT] 삼성·하이닉스, 50나노 D램도 양산 '반도체 코리아'

▶ [J-HOT] "쉬는 김에 푹 쉬어라" 대기업 최대 5일 휴무 돌입

ADVERTISEMENT
ADVERTISEMENT